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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한참을 웃었는데, 어딘가 푸근해

<매직 아워> 각본·연출 미타니 고키의 온화한 소동극이 주는 매혹

보스의 여자와 밀회를 나누다가 들킨 빙고는 전설의 킬러 데라 토가시를 찾아온다는 조건으로 풀려난다. 도저히 데라 토가시를 찾을 수 없었던 빙고는 무명배우인 무라타를 데리고 온다. 영화 촬영이라고 속이고, 각본 없이 애드리브로 전개하는 실험적인 영화라고 설득하여 무라타를 보스와 만나게 하는 데 성공한다. 놀라운 연기력 덕에 보스는 무라타를 데라 토가시라고 믿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매직 아워>는 도저히 현실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황당하고도 난처한 이야기를 맹렬한 기세로 풀어간다.

감독 미타니 고키는 <매직 아워>를 “1분에 3번 웃음이 터져나오는 하이퍼 논스톱 코미디”라고 설명한다. 감동이나 의미도 좋지만 일단은 코미디에 모든 것을 건 것이다. 데라 토가시를 연기하는 무라타는 처음 보스를 만나는 장면에서 자기 마음대로 연기를 풀어간다. 상황이 삐끗하자 빙고가 무라타를 끌고 나가 설명을 하고, 다시 데리고 들어온다. 무라타는 아까 했던 말을 대사라 생각하고 다시 내뱉는다. 보스는 아까 들었던 것 같은데, 라고 어리둥절하면서도 무라타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그냥 넘어간다. 빙고의 마음도 벼랑 끝이겠지만, 그 상황이 미묘하게 변화하면서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있는 관객 역시 아찔하면서도 폭소가 터진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이 그저 영화 촬영이라고만 믿고 있는 배우. 너무나 깊게 빠져들어,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면서 만족하는 무라타. 그건 허구의 세계에서 최고의 절정을 맛보는 예술가이자 관객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기도 하다.

<매직 아워>는 전형적인 코미디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사소한 거짓말에서 출발하지만 모든 것이 얽히고 꼬이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코미디. 전개되는 상황마다, 나오는 대사마다 요절복통인 희극. 미타니 고키의 장기는 바로 그것이다. <매직 아워>는 영화지만, 단지 영화가 아니다. <매직 아워>는 도호스튜디오에 세워진 세트에서 전체를 촬영했다. 휴대폰이 있으니 분명 현재이겠지만, 항구 도시의 풍경은 전혀 현재라고 보기 힘들다. 자신들도 그것을 알기에, 등장인물을 통해서 굳이 이야기해준다. 도시가 워낙 복고풍이어서 촬영장소로 많이 이용된다고. ‘이곳’이 허구의 공간, 연극적인 무대임을 이미 선언하는 것이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는 연극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대사 역시 그렇다. 시간과 공간도 무대극처럼 제한되어 있다. 즉 <매직 아워>는 철저히 연극적인 영화이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타니 고키의 출발점이자 완결점이 연극이기 때문에.

1961년 도쿄에서 태어난 미타니 고키는 일본대 예술학부 연극학과 재학 중인 83년 극단 ‘도쿄 선샤인보이스’를 결성하여 각본과 연출을 담당하게 된다. 프로로서 ‘일’을 처음 하게 된 것은 TV였다. 1988년에 시작된 <후지TV>의 <역시 고양이가 좋아>란 시추에이션 코미디의 각본을 1989년 4월부터 이어서 쓰게 된 것이다. 여세를 몰아 89년 7월 ‘도쿄 선샤인보이스’의 <천국에서 북으로 3킬로>라는 연극을 시작으로 <료마가 간다>(1990), <12인의 우수한 일본인>(1990), <쇼 머스트 고 온>(1991), <라디오의 시간>(1993), <도쿄 선샤인보이스의 함정>(1994)을 공연한다.

계속해서 연극에 정진할 것 같았던 미타니 고키이지만, 운명의 전기가 찾아온다. 94년 <후지TV>의 미스터리 드라마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각본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후루하타 닌자부로>는 <형사 콜롬보>를 일본식으로 변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의 전모를 미리 보여주고, 이후에 범죄의 허점을 찾아내거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후루하타 역을 맡은 다무라 마사카즈는 피터 포그보다 훨씬 명석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눌한 말투로 범죄자의 속내를 파고드는 캐릭터가 아주 흡사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범죄극이면서도 <후루하타 닌자부로>는 탁월한 코미디로 부족함이 없었다. <후루하타 닌자부로>는 10여년이 흐른 뒤에도 특별판이 만들어질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고, 미타니 고키는 드라마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그리고 도쿄 선샤인보이스가 휴지(休止)에 들어간다.

이후 미타니 고키는 드라마 <임금님의 레스토랑>(1995), 연극 <웃음의 대학>, 자신의 연극 <라디오의 시간>을 각색한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타니 고키의 원류는 어디까지나 연극이었다. 2002년에 만든 코믹드라마 <HR>에서는 관객이 보는 앞에서 30분간 논스톱 촬영을 하는 연극 시스템을 실험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모두의 집> <더 우초텐 호텔>로 이어진 영화에서도 여전히 연극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2004년에는 <NHK> 대하드라마 <신선조>의 각본을 쓰게 된다. 가장 일본색이 강한 <NHK> 대하드라마와 코미디 연극의 대가인 미타니 고키의 만남은 기묘하면서도 적합했다. 미타니 고키는 <료마가 간다>와 <료마의 아내와 그의 남편 그리고 애인>이란 연극을 만들면서 료마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대하드라마 사상 가장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신선조>를 쓰면서, 미타니 고키는 배우들이 실제 인물과 비슷한 나이가 되도록 설정하여 리얼리티를 높이고 캐릭터간의 관계를 정밀하게 묘사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단지 ‘코미디’만이 아니라, 미타니 고키는 인간과 그들이 맺는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추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타니 고키는 2006년 <더 우초텐 호텔>을 연출했다. 감독 데뷔작인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가 6억엔, <모두의 집>(2001)이 13억엔을 벌어들인 것에 비해 <더 우초텐 호텔>은 4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61억엔을 벌어들였다. 드라마에서 단계를 밟아온 미타니 고키는 마침내 폭넓은 대중의 찬사를 받는 감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1932년작 <그랜드 호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더 우초텐 호텔>은 새해를 맞는 일급 호텔에서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도망친 국회의원, 공연 전에 죽을 거라고 소동을 벌이는 엔카 가수 등 기묘한 손님들과 8년간의 길거리 라이브를 통해 가수의 꿈을 키웠던 벨보이, 한때 국회의원의 연인이었던 룸메이드 등 호텔 종업원들이 서로 얽히면서 쉴새없이 사건들이 벌어진다. <더 우초텐 호텔>이 큰 인기를 끈 것은, 영화 전체에 깔린 따뜻한 정서 때문이었다. 인간사의 수많은 사건들이 하나의 호텔에서, 하룻밤 사이에 순식간에 명멸하지만 미타니 고키는 그 모든 것을 따뜻한 시선과 적절한 리듬으로 어루만진다. 한참을 웃고 나면, 어딘가 푸근한 느낌이 든다.

<더 우초텐 호텔>의 정서는 그대로 <매직 아워>에 이어진다. <더 우초텐 호텔>에 야쿠쇼 고지, 사토 고이치, 가토리 싱고, 마쓰 다카코, 시노하라 료코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며 눈길을 끌었던 것처럼 <매직 아워>에는 사토 고이치, 쓰마부키 사토시, 후카쓰 에리, 아야세 하루카, 니시다 도시유키 등이 등장한다. 영화 매체에 대한 애정은 더욱 노골적이 되었고, 어딘가 당혹스러우면서도 친근한 분위기는 더욱 정교해졌고, 발군의 템포와 스피드로 관객을 웃기는 솜씨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코미디를 찍는 것이 가능했다’는 말처럼 <매직 아워>는 <더 우초텐 호텔>보다 훨씬 더 골계미가 넘친다. 웃음의 폭발력은 더욱더 강해졌고, <더 우초텐 호텔>의 느슨한 정서는 경쾌한 순발력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졌다.

미타니 고키의 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온화한 소동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미타니 고키는 “극장에서 신나게 웃다가 돌아가는 길에 연극의 내용을 잊어버리는 것이 이상적인 희극”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 이력만으로 본다면 단지 웃음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라디오 드라마를 녹음하면서, 집을 지으면서, 새해를 맞는 호텔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때로 격렬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드러움으로 귀결된다.

‘매직 아워’는 해가 넘어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밝은 빛이 남아 있는 순간을 말한다. 하루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신비한 순간. 이미 밤이 되었지만, 아직 낮으로 남아 있는 순간. ‘매직 아워’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픽션이면서도 현실이고, 사실이면서도 허구인 어떤 순간. 그것이야말로 영화 그리고 미타니 고키가 만들어온 모든 픽션의 순간일 것이다. 미타니 고키는 그러한 매 순간을 즐기라고 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매직 아워는 언젠가 돌아온다. 나에게 다가온 매직 아워를 놓쳐버렸다면? 미타니 고키는 내일을 기다리면 된다고, 가볍게 답을 던져준다. 다시 돌아오는 매직 아워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 희망과 웃음이, 이야기와 노는 재능으로 무장한 미타니 고키의 진정한 힘이다.

미타니 고키는 돌아갈 곳을 알고 있다. ‘도쿄 선샤인보이스’는 해체한 것이 아니라 30년간의 휴지였다. 미타니 고키는 2024년 다시 선샤인보이스라는 이름으로 연극을 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즉 그는 연극인으로서 지금 영화와 드라마에도 투신한 것이다. 미타니 고키는 “각본가로서의 나는, 연출가로서의 나를 그다지 신뢰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 불신이야말로 미타니 고키의 세계가 더욱 확장되고 전진하는 원동력이다. 그는 하나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타니 고키 각본의 영화, 연극, 드라마를 보며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있다. 그리고 즐거워한다. 관객이 그의 영화와 연극, 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하기 전에 그가 첫 번째 관객으로 가장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 즐거움, 그리고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미타니 고키의 따뜻한 시선이 언제나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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