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9월 스웨덴 스톡홀름 기차역에 조선의 여인 한명이 비장하게 서 있었다. 스물한살 최영숙(1906~32), 스웨덴을 찾은 첫 번째 조선인. 이화학당을 마친 최영숙은 말하자면 ‘마르크스 걸’이었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폭넓게 실현하려던 그녀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회운동가 엘렌 케이의 나라 스웨덴으로 무작정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스웨덴어는 가서 배웠다. 그러나 5년 만에 스톡홀름 대학 경제학사를 취득하고 그 사이 황태자 도서관 연구 보조원으로 근무할 정도로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였다. 숱한 스웨덴 남자들의 구애에도 자신은 조선으로 돌아가 큰일을 해야 하므로 당신의 연애를 받아줄 수 없다고 뿌리쳤다 한다. 아시아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구스타프 아돌프 황태자의 정중한 만류에도 그녀는 1931년 11월 귀국했다.
그런데 혼자 온 것이 아니라 둘이 되어 왔다. 최영숙은 귀국길에 들른 20여개국의 여행지 중 마지막인 인도에서 미스터 로라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아이를 갖는다. 그러나 최영숙은 임신에도 넉달간의 인도생활을 접고 조선행을 택했다. 돌아가서 무언가 사회에 헌신하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영어, 독어, 일어, 중국어, 스웨덴어에 두루 능통했던 그녀는 외국어 교수를 희망했으나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기자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능력이 있는데 사회가 받아주지 않았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고 결국 점포를 열고 콩나물 장사를 했다. 그러다 극심한 영양실조 등으로 임신한 몸에 탈이 났으며 아이까지 사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도 1932년 4월 자택에서 27살의 나이로 곧 세상을 떴다. 미스터 로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돈! 돈! 나는 돈의 철학을 알았소이다.” 당찬 신여성의 삶이 그렇게 마감했다. 그녀가 죽자 사람들은 최영숙이라는 인재가 사회에서 거절당한 연유가 아니라 어떻게 그녀가 혼혈아를 임신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다고들 한다.
추천인은 누구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황금광 시대> <경성 자살 클럽> <경성기담> 등 저술
추천한 이유는
“스웨덴의 황태자가 총애했고 가지 말라고 만류까지 했지만 귀국했다. 유관순의 1년 후배였지만 국내에는 연줄이 없었다. 취직을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소비조합운동을 하려다가 실제로는 콩나물 장사를 하게 된 거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이 사람이 사실상 뭔가 해놓은 일이 없다. 때문에 기록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근대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을 위해 헌신하려 했고, 드라마처럼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영화로 만든다면
“사진을 보면 좀 퉁퉁하고 그다지 미인이라고 부르긴 어렵지만 그래도 최영숙을 연기하는 배우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미인이면 좋을 것 같다. 손예진이면 어떨까?” 전봉관 교수의 바람이다. 한명 더 추천해보자. 엄지원이면 어떨까? 똑똑해 보이기도 하고 용감무쌍해 보이기도 하고 어딘가 세련되어 보이기도 하고 비극에도 어울릴 것 같다. 그리고 영화화된다고 할 때 열쇠는 이 명민한 신여성이 어떻게 사회운동에 힘 한번 못써보고 어이없이 사멸해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되어야 할 텐데, 혹시 경성을 다룬 영화 <모던보이>의 감독 정지우 감독이 전작 <사랑니>에서 배우들의 감정을 포착하던 그 방식 그대로 이 여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보여준다면 또 어떤 조화가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