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친구가 부러울 지수 ★ 미안하다는 말의 소중함 지수 ★★★★ 갓난아기는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경각심 지수 ★★★★★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하지 않은 탓에 벌어진 비극을 그리는 영화다. 죄를 지은 자는 잘나가는 외환딜러인 예준(장현성)이다. 과거 운동권 학생이었던 그는 공항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요리사 재문(장현성)과 절친한 친구다. 재문의 아내인 미용사 지숙(홍소희)도 예준을 살갑게 대한다. 하지만 어느 날 예준이 실수로 재문의 아이를 질식사시키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무너진다. 재문은 예준의 죄를 덮으려 입을 다문다. 지숙은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다그치지만,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다. 그리고 예준도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안 한다. 결국 재문은 교도소에 수감되고, 지숙은 예준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2년이 흘러 세 사람은 다시 만난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지난 2006년 <방문자>로 데뷔한 신동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속물 지식인과 강건한 신념으로 가득 찬 청년을 친구로 맺어주었던 전작처럼 이 영화에서도 감독은 낯선 관계를 조망한다. 다만 이번에는 관계의 형성이 아닌 파국이 결론이라는 점이 다르다. 극중 삼각의 인물관계는 다층적으로 읽힌다. 외적인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통속적인 치정극으로 보인다. 하지만 감독이 설정한 한국이라는 공간을 비롯해 예준과 재문 사이에 놓인 계급적 차이를 생각하면, 영화 속의 관계는 강한 사회적 알레고리를 지니게 된다. 말하자면 자본(예준)과 그에 종속된 노동자계급(재문과 지숙)의 비극인 셈이다. 극중에서 예준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진보 지식인으로서의 위치를 재문과의 만남으로 지키고 재문과 지숙은 그에게서 받는 경제적인 혜택이 달콤하다. 영화는 언뜻 보기에는 안정된 이 관계가 어느 한쪽의 무책임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을 제기하는 한편, 자본이 얽힌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는 그런 불합리한 관계조차도 함부로 깨기가 어렵다는 걸 드러낸다. 양극화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어느 사회파 감독의 통찰있는 시선이다.
tip/ 극중에서 재문의 아기가 죽는 모습은 가장 견디기 힘든 장면이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제작진은 실제 아기의 등에 몇 조각의 얼음을 넣어 울렸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엎드려 누인 것만으로 아기가 죽을 수 있을까? 신동일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당시 신문에서 여러 번 읽었던 비슷한 사건을 토대로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