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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무관심에 의해 버려진 한 소녀의 삶 <가벼운 잠>
김성훈 2008-10-22

단편이었더라면 지수 ★★★★ 어색한 연기 지수 ★★★ 베스트극장 지수 ★★★

1999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발생한 한 소녀가장의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세상의 무관심에 의해 버려진 한 소녀의 삶을 따라간다. 16살 열린(최아진)은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고, 여동생 다린(류현빈)과 함께 살아간다. 부모님을 여읜 뒤, 약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는 그녀는 한번이라도 편하게 잠을 자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부담감과 불안감은 큰 법. 그래도 주위에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몇 있다. 수진(홍아름)은 유일하게 학교에서 그녀 옆을 따라다니는 친구. 수진의 미팅 주선으로 열린은 주고(윤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을 열려는 주고와 스스로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열린은 서로 나아가지 못하고 간극만 확인할 뿐이다. 또, 그녀가 부모님을 여읜 뒤부터 지속적으로 도와주는 구청 복지과장은 수시로 열린 자매의 집을 방문해 보살핀다.

줄거리만 보면 그럴듯한 성장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른다. 그 중심에는 마음을 열지 않는 무기력한 주인공 열린이 있다. 영화는 그녀의 힘든 상황을 단면적으로 나열할 뿐 그녀가 다른 사람들, 부조리한 세상과 어떻게 부딪히고, 어떻게 좌절하는지 설득력있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는 친구, 남자친구, 세상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행동할 뿐이다. 이것이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인물이 변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작 <아무도 모른다>가 떠오른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급기야 집을 나가 세상과 직접 부딪힌다. 편의점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얻어먹거나 학교에 가고 싶어 학교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 끼려고 하거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번갈아가며 물을 떠오거나 하는 식의 생존에 대한 몸부림이 이 영화에는 없다. 세상에 대한 감정들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의 후반부 구청 복지과장의 돌발적인 행동이나 여주인공 열린의 마지막 선택은 감독의 의도와 진심은 느껴지나 감정적으로 분노나 큰 울림을 주지 못한다. 영화에서 서사라는 것은 뭐든지 부딪혀야 진행되고 구축되는 법이다.

tip/ 이 영화에서 음악 편곡과 연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윤효간은 이 영화와 청소년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공연 <피아노와 이빨>을 접목해 <열린이의 꿈>이라는 공연을 만들었다. 공연 <열린이의 꿈>은 매월 한번씩 학교를 찾아가거나 학생들을 초청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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