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민둥산>과 <로나의 침묵>

이번호에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을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내보내면서 꼭 언급할 영화 한편이 빠져서 못내 아쉽다. 김소영 감독의 <민둥산>은 올해 부산에서 내가 본 최고의 한국영화였으나 감독 인터뷰가 성사되기 전에 감독이 출국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데뷔작 <방황의 날들>을 보지 못한 채 <민둥산>을 보고나자 조만간 <방황의 날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민둥산>은 별다른 장식없이 감정적 충만함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어떤 슬픈 선율도 덧붙이지 않은 연출로 인해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스토리가 흔한 신파에서 영화적 마술로 비약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이야기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엄마와 어린 두딸에서 시작한다. 엄마는 두딸을 데리고 서울의 아파트를 떠나 시골 고모의 집으로 간다. 아이들을 고모의 집에 맡겨놓고 엄마 혼자 서울로 가버렸을 때 두딸은 자신들에게 닥친 고난이 엄마가 돌아오면 끝날 것이라 믿는다. 동전을 모아 돼지 저금통이 꽉 차면 그때쯤 오겠다던 엄마의 약속은, 그러나 지켜지지 않는다. 이 가여운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극장>에 등장할 법한 이야기건만 영화는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누군가를 동정하는 걸로 대리만족을 유도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 음악 없이 연신 클로즈업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두딸의 믿을 수 없을 만큼 투명한 연기가 보는 사람의 유년기를 일깨워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볼 때까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대표되는 이란영화의 어떤 미학과 닮은 <민둥산>은 한국영화에선 참 보기 드문 표현력을 보여준다. 여러분이 직접 확인할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민둥산> 외에 올해 부산에서 내가 본 최고의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로나의 침묵>이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야 안 봐도 짐작이 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 <로나의 침묵>은 <아들>이나 <차일드>를 뛰어넘는다. 전처럼 카메라를 흔들지 않으면서 다르덴은 관객에게 주인공의 선택을 관찰하게 만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윤리적 딜레마 앞에 진정 영웅적인 선택을 하는 여인을 <로나의 침묵>에서 만날 수 있다.

고 최진실의 표지를 보고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사진팀장 손홍주 선배가 최진실 표지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꺼냈을 때까지도 표지로 고려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마음에 담아두고 며칠 생각한 끝에 표지와 기획기사를 최진실로 간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점점 자라는 동안 ‘최진실법’을 비롯해 이야기의 중심이 엉뚱한 데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진실의 죽음이 한국사회의 어떤 문제를 보여준 예라 해도 화제의 초점이 온통 그녀의 삶이 아니라 죽음에만 쏠려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인의 생애를 그 자체로 존중하며 돌아볼 기회를 <씨네21>이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최진실은 충분히 그럴 만한 비중이 있는 배우였다고 생각한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