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57번째는 김충남이 기증한 고 김학성 촬영감독의 유품 중 1937년 단성사 프로그램 북입니다.
지난 9월 단성사의 최종 부도 뉴스가 많은 영화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1907년 설립되어 한 세기 동안 서민과 함께 웃고 울었던 대중문화의 장이자 한국영화 역사의 현장인 단성사는 상류층이 드나들던 연희오락장으로 시작하여 1917년 흥행사 박승필이 경영하면서 영화전용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전통연희공연장 광무대의 경영자이기도 했던 박승필은 천부적인 흥행사 기질을 발휘해 단성사 재개관을 위해 대대적인 보수를 하는 한편, 일본 천활영화사와의 공급계약을 통해 유니버설, 고몽영화사 등의 외화를 수입해 일주일에 두편씩 신작을 걸고 인기 변사를 고용하며 조선 극장가를 압도했다. 특히 문필가를 두어 광고문구를 쓰게 하고 관객 설문, 3주년 1+1 행사 등 홍보와 서비스가 돋보였다. “…구변으로는 제일류되는 서상호군을 특별히 초빙하여 변사주임으로 정하고 천연스런 표정과 익살 잘 부리는 변사와 희로애락을 기묘하게 자아내는 변사 5∼6인이 있어 매일 밤무대 위에서 일거일동을 잘 설명하는 것은 본관의 자랑일 뿐 아니라 앞으로 관람하시는 데도 크게 평판을 얻을 것입니다. 겨울밤은 점점 길고 눈이나 와서 땅에 가득히 쌓여 적막하기 짝이 없을 때, 겨울에 대한 별별 감상이 만단으로 일어날 때 본관에 오시면 난로는 몸을 따뜻하게 하여주고 백설 같은 하얀 포장(스크린)에는 참으로 처음 보는 기기괴괴한 사진(영화)이 비칠 적마다 여기가 정말 낙원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나실 터이니 밤에 구경거리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줄 생각합니다”라는 재개관 당시의 홍보문구는 변사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새로운 오락거리 ‘영화’에 대한 놀라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박승필은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와 최초의 조선인 스탭으로 만들어진 <장화홍련전>(1924) 등을 직접 제작하며 경영수완으로 거둔 자본을 조선영화 개척을 위해 환원했으며 이필우, 이구영 등의 초기 영화인의 산파 역할을 했다. 이후 나운규 프로덕션을 재정지원하기도 했다.
단성사는 <아리랑>(1926),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1935), <겨울여자>(1977),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등 한국영화사의 굵직한 작품들을 개봉했다. 한국영화박물관에 전시 중인 1937년 단성사 프로그램 북에는 나운규의 유작 <오몽녀>의 상영광고가 실려 있다. 최소원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램팀(기증문의 02-3153-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