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tual Nightmare
2000년, 감독 마이클 패틴슨 출연 마이클 머니, 타스마 윌튼 장르 SF스릴러 (파라마운트)
B급영화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재능의 하나는, 주류영화의 아이디어를 끌어오면서 독창적으로 변형시키는 재능이다. 거기에 속도까지 빠르다면 금상첨화다. 지금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의 소재와 주제를 슬쩍 가져오고 재빠르게 아류작을 만들어낸다. B급영화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 코먼의 제작방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할리우드의 메이저영화와 정면으로 붙을 수가 없으니 변칙을 쓰는 것이다. 호주영화인 <버추얼 나이트메어>는 유명감독이나 배우도 없고, 첨단의 특수효과도 없고, 관객을 사로잡는 멋진 액션도 없다. 하지만 <버추얼 나이트메어>는 관객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쏠쏠한 재미까지 안겨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는 설정은 <트루먼 쇼>와 <매트릭스>의 아이디어를 뒤섞은 것이다. 물건들에 상품명이 떠오르는 광경은 <파이트 클럽>에서 따왔을 것이다. <버추얼 나이트메어>는 기존 영화들의 아이더와 장면들을 빌려오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미하여 참신한 플롯을 만들어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커트 코베인이 아이들을 위한 음반을 발표하고, 마릴린 먼로가 새 영화를 찍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며 테일 헌터가 잠에서 깨어난다. 오로라라는 상품을 파는 회사의 홍보 직원으로 일하는 테일 헌터는 꿈에서 본 이미지를 광고 아이디어로 제출하여 상사의 신임을 얻게 된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더니 보이는 모든 물건에 명칭과 바코드가 붙어 있다. 함께 일하던 동료는 시체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더니, 하와이에 가 있다고 메일이 날아온다. 그의 꿈은 점점 더 구체적인 악몽으로 흘러간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다른 것이 없다. 테일 헌터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한마디로 ‘매트릭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테일 헌터는 ‘구세주’일까? 그러나 관객이 알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버추얼 나이트메어>는 다시 모든 것을 뒤집어버린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무엇이 진짜 ‘현실’인지 제대로 알 수 없게 만든다. 자신들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는 사람들조차 가상현실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보고 싶어한다. 헌터가 사는 마을의 이름은 ‘페어뷰’다. 그들이 보는 세계는, 그들이 마땅히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다른 세계’다. 그것을 누군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주로 TV에서 활동했던 마이클 패틴슨 감독은 눈속임이나 과장없이 <버추얼 나이트메어>를 서정적인 스릴러물로 다듬어냈다. 아울러 ‘행복하다’라는 환상에 젖어 있던 50년대 미국의 풍경을 풍자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점도 볼거리.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