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대비 때깔 지수 ★★★★ 영리한 스릴러 지수 ★☆ 동네방네 피칠갑 지수 ★★★☆
성실하고 정직한 트럭 운전사 철민(유해진)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심장병을 앓던 딸이 중태에 빠진 것이다. 당장 수술비 6천만원을 마련해야 하는 철민은 최후의 수단으로 도박판에 끼어들지만 오히려 트럭까지 내주는 상황에 처한다. 자신을 사기 도박판에 빠뜨린 자를 쫓던 그는 조직폭력단의 두목이 여러 명의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결국 시체를 몰래 처분하는 일을 떠맡게 된다. 딸을 살리기 위한 일념으로 산골로 향하던 그는 사이코 연쇄살인범 김영호(진구)를 태우게 되면서 더 커다란 위험에 빠진다.
차려놓은 재료로만 판단한다면 <트럭>은 꽤 먹음직스런 스릴러영화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순박한 주인공, 검은 함정과 불가피한 상황, 그리고 여기에 덧씌워지는 또 하나의 올가미까지, 요리하기에 따라 이 영화는 공포감과 긴장감을 갖춘 짜릿한 오락물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악의 늪속으로 빠져드는 주인공이 그곳에서 벗어나오기 위해 격렬히 발버둥치는 모습은 진한 자극과 카타르시스를 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재료의 풍미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것은 허술한 조리법 탓으로 보인다. 가장 앞서 눈에 들어오는 결함은 우연성이라는 요소가 이야기의 중요 매듭마다 배치됐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극도의 긴장감과 흥미가 발생하는 중차대한 순간에서 우연을 남발한다. 화물칸에 피가 흥건한 시체들이 쌓여 있고, 조수석에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탄 이 트럭이 경찰의 엄중한 검문을 받는 숨막히는 상황조차 안이한 해결방법(그것도 두번씩이나!) 때문에 긴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 영화의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각 장면들이 의미화되지 못한 채 산만하게 배치됐다는 점도 흠결이다. 영호의 주관적 진술장면이나 샛별(이채영)의 돌연한 등장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거나 서스펜스를 증폭시키기보다 오히려 집중을 방해한다. 이유야 어쨌건 악과 내통했던 철민에게서 파우스트의 딜레마를 느낄 수 없게 하는 마지막 장면도 수긍하긴 어렵다.
<트럭>에서 주목할 점은 17억원의 순제작비를 들여 37회차 만에 영화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적 완성도가 뒤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제작비 절감의 모범 사례로 선뜻 꼽을 수 없는 것은 내용적 완성도 때문이다. 만약 <트럭>이 갖고 있는 내러티브와 캐릭터상의 결점이 이 ‘산업적 효율성’에서 기인했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tip/ <우린 액션배우다>를 즐겁게 본 관객이라면 영화 중반부를 유심히 보라. 영호의 살인 행각을 보고 도망치는 양아치 청년들은 바로 <우린 액션배우다>에서 아버지에 관한 가슴아픈 사연을 들려준 권귀덕과 위노나 라이더 때문에 영화를 시작했다는 곽진석이다. 이들은 실감나는 액션연기 대신 살인마의 광기에 희생되는 ‘피해자’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