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연출지수 ★★★★ 반전의 감흥지수 ★★★☆ 감독의 세 번째 영화 ★★★★
교수 남편과 사랑스러운 딸을 가진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여인 다이애나(우마 서먼).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늘 불안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그 불안의 근원은 15년 전, 이 마을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의 기억이다. 당시 17살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는(어린 다이애나 역은 에반 레이첼 우드가 연기한다) 단짝이었던 모린(에바 아무리)과 극도의 공포 속에서 생사를 택해야 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총기난사사건 15주년을 맞이하여 용기를 내어 희생자 추모식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지만, 두려움과 죄의식을 떨칠 수 없는 그녀의 눈앞에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모래와 안개의 집>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바딤 페렐만의 <인 블룸>은 지난해 미국사회를 충격에 떨게 한 버지니아 총격사건을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소재의 유사성과 그걸 아름답고 슬픈 시적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방식 때문에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엘리펀트>가 사건 당일 각 인물들의 찬란했던 행로를 따라갔다면, 이 영화는 15년 전후를 모두 담고 있다. 두 소녀의 우정이 만개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일상이 사건 당일의 급박한 현장까지 이어지는 과거의 시간과 총기난사사건 15주년을 앞둔 현재 시간이 교차하는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식의 일반적인 효과보다는 두 시간대가 동일한 무게중심을 갖고 만나면서 서로에게 끊임없이 침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전혀 다른 시공간이지만 각 장면들이 생과 사의 묘한 기운을 공유하며 치밀하게 교차된다는 말인데, 이를 위해 감독은 물, 꽃, 동물, 빛 등의 이미지를 적극 끌어온다. 그런 이미지들이 열정적이고 불안정한 청춘 다이애나의 복잡한 내면과 지독한 상실감, 슬픔에 흔들리며 쇠약해져가는 성인 다이애나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처럼 영화의 동력은 당시의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인물의 요동치는 심리이기 때문에 영화 전반적으로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공기가 스며든다. 감독이 영화 마지막 순간에 용감하게 배치한 반전은 영화에 등장한 수수께끼 같은 대사들과 분위기에 대한 설명인 동시에, <인 블룸>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시 읽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TIP/바딤 페렐만은 할리우드에서의 리메이크가 결정된 한국영화 <파이란>을 연출할 예정이다. 장백지가 연기했던 파이란 역에는 <인 블룸>에서 여고생 다이애나 역을 맡았고 얼마 전 개봉했던 <미스 언더스탠드>에서 딸로 출연했던 에반 레이첼 우드가 내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