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54번째는 전용호가 기증한 전정근 음악감독의 <호국 팔만대장경> 주제음악 악보입니다.
함경도 신천에서 출생한 전정근 음악감독은 1961년 <주마등>(이만희)으로 데뷔한 이래 1980년대까지 430여편의 음악을 만든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음악가로 사극, 전쟁, 액션, 멜로, 괴기, 코미디 등 거의 전 장르의 음악을 소화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가톨릭계 유치원을 다녔던 전정근은 중학생 때까지는 미술에 심취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유치원 선생이자 성당 소프라노인 누나의 영향으로 악보를 보기 시작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고 학교 합창단 지휘를 시작했다. 초기 북한체제가 형성되던 시기에 러시아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 월남하여 공군 군악대 편곡계에서 일하던 시절 영화음악 녹음을 위해 비용이 저렴한 군악대를 쓰던 관행을 통해 만난 음악감독 김대현과의 인연으로 <잊을 수 없는 사람들>(1957) 음악 작업에 참여하면서 영화음악 커리어를 시작했다. 주로 관현악을 위주로 작업했던 그는 데뷔작 <주마등>부터 <다이알 112를 돌려라> <돌아오지 않는 해병> <청녀> 등 이만희 감독의 많은 작품을 함께했다. <만추>의 마지막 장면, 낙엽이 지고 인적이 없는 창경궁 벤치에서 연인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녹음을 하다가 “메로디를 쭉 나가다가 라스트 끊자. 음악은 여기서 아웃시키자. 거기서 바람소리를 넣자”라고 제안해 감독이 받아들였다. 애절한 음악이 바람 부는 소리와 함께 ‘삭-’ 사라지며 바람소리만 나는 가운데 엔딩 크레딧을 올렸다. 이 마지막 장면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멜로영화 음악을 맡아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당시에는 음악감독이 창작은 물론 계약에서부터 오케스트라 섭외, 녹음실 사용, 진행 등의 운영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악기를 얼마나 구성하느냐에 따라 이윤이 결정되었는데 음악적 욕심 때문에 손해를 보곤 했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는 30명 정도의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따로 썼고, <증언>이나 <들국화는 피었는데> 같은 전쟁대작에서는 60~80명의 관현악단과 40~50명의 합창단을 동원했다.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친필 악보를 전시 중인 <호국 팔만대장경>에서는 웅장한 사극의 느낌을 강조했고 스테레오로 녹음했다. 전정근은 <홍길동>(1967) 등의 신동헌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을 모두 맡았는데 그중 액션장면은 매우 세밀하게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힘든 작업이었다고 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