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Fun! Movie > 알고봅시다
[알고 봅시다] 비틀기와 뒤집기, 멍청함과 뻔뻔함의 매력
김도훈 2008-08-21

기존 영화를 패러디하는 스풉무비의 모든 것

스풉무비(Spoof Movie).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단어로 바꾸자면 패러디영화(Parody Movie)다. 말 그대로 잘 알려진 영화들을 비틀고 풍자해서 만드는 코미디영화라는 의미다. 8월21일 개봉하는 <슈퍼히어로>가 바로 그런 영화다. 그런데 스풉무비들이 사용하는 기법은 아주 간단하고도 뻔하다. 다른 영화의 유명한 장면을 뒤틀어서 재현하거나 아이콘적인 캐릭터를 천하에 쓸모없는 멍청이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토록 뻔한데도 이런 바보 같은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가 뭐냐고? 스풉무비의 빛나는 역사와 재능을 모르시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다.

1. 스풉무비의 못 말리는 대가들

<불타는 안장>

세명의 역사적인 대가들이 있다. 먼저 서부극 장르를 패러디한 <불타는 안장>(1974)으로 스풉무비 장르를 창조한 멜 브룩스다. 그는 이후 고전 호러영화를 패러디한 <영 프랑켄슈타인>(1974), 앨프리드 히치콕의 세계를 마음대로 재조합한 <고소공포증>(1977) 등을 통해 당대의 우디 앨런에 비견할 만한 코미디영화의 작가로 떠올랐다. 멜 브룩스의 특징은 고전적인 장르영화의 공식과 지식을 영화의 줄거리와 장면에 꼼꼼하게 삽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잘 알려진 영화들의 장면들만 패러디하는 데 집중하는 최근의 스풉무비들에 비해 영화적인 텍스트가 풍부하다. 할리우드에서 스풉무비를 대중화한 대가는 제리 주커와 데이비드 주커 형제다. 1980년대와 90년대 ‘ZAZ사단’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은 비행기 재난영화인 <에어포트> 시리즈를 패러디한 <에어플레인>과 필름누아르와 경찰영화를 뒤섞어서 코미디의 재료로 썼던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를 통해 스풉무비를 돈 되는 메이저 장르로 안착시켰다. 사실 주커 형제는 <에어플레인> 시리즈와 <총알탄 사나이> 1편까지만 해도 좀더 멜 브룩스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태의 스풉무비를 선보였다. 두 영화는 유명한 고전영화들을 패러디의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상당수의 코미디 장면들은 영화의 패러디와는 상관없는 부조리한 상황극에 가까웠다. <무서운 영화> 시리즈나 90년대 초·중반 등장했던 <못말리는 비행사>류의 ‘최대한 많은 영화의 장면을 마구잡이로 패러디한다’는 전략은 오히려 <총알탄 사나이2>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멜 브룩스와 주커 형제가 스풉무비를 창조하고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켰다면, 2000년대 스풉무비의 대가는 확실히 웨이언스 형제들이다. 이들이 할리우드에 확실하게 이름을 못박은 건 지난 2000년 여름에 등장해 2주 만에 1억달러 넘는 흥행성적을 거둔 <무서운 영화>가 개봉하면서다. <무서운 영화>는 마구잡이로 최신 히트작들을 패러디하는 얄팍한 방식의 스풉무비 시장을 새롭게 개막했고, <낫 어나더 틴 무비>(2001), <데이트 무비>(2006), <에픽무비>(2007), <슈퍼히어로>(2008) 등 여름 틈새시장을 노린 싸구려 스풉무비 붐을 일으켰다.

2. 놓치면 못 말리는 스풉무비 걸작 10

멜 브룩스의 <불타는 안장>은 요 골치아픈 장르의 기원이다. 게다가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여전히 웃기다. 요즘도 종종 패러디되는 카우보이 방귀장면은 이후 패럴리 형제들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린 방귀 유머의 원조이기도 하다. <에어플레인>(1980)은 주커 형제라는 걸출한 스풉무비의 대가들을 탄생시킨 영화이며, 좀더 현대적인 스풉무비의 형태를 완성해냈다. <스페이스 워즈>(1984)는 <스타워즈>류의 당대 SF영화에 대한 멜 브룩스의 유쾌한 대답이다. <총알탄 사나이>(1988)는 처음으로 메이저 블록버스터급 흥행성적을 거두기 시작한 스풉무비다. 이때부터 막무가내 스풉무비의 시대는 진짜로 개막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엑소시스트>를 패러디한 <리포제스트>(1990), <탑 건>을 패러디한 <핫 샷>(1991), <원초적 본능>과 <위험한 정사>를 혼합한 <보험걸린 사나이>(1993) 등등이 90년대 초반 물밀듯이 쏟아져나왔으나 DVD로도 찾아보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심지어 이 끔찍한 시기에는 멜 브룩스마저 <못말리는 로빈 후드>(1993) 같은 안이한 범작들을 만들었다. 90년대가 지나자 스풉무비의 인기와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스타트랙>을 오마주한 <갤럭시 퀘스트>(1999)나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패러디한 <오스틴 파워>(1997)처럼 질좋은 스풉무비들이 간간이 등장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다시 스풉무비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은 <무서운 영화> 시리즈(2000~2009)다. 1편과 4편이 단연 베스트다. 그외 좀비 호러 장르와 80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공식을 기겁하게 뒤틀어낸 영국의 신성 에드거 라이트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뜨거운 녀석들>(2007)은 할리우드식의 가벼운 스풉무비 공식을 좀더 진화시킨 걸작이다.

3. 스풉무비 최강의 스타들

<무서운 영화4>의 안나 패리스

스풉무비의 주인공이 지녀야 할 최대의 덕목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는 기술’이다. 이걸 가장 잘해낸 스타는 역시 주커 형제의 <에어플레인> 시리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로버트 헤이즈다. 그는 어떠한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스풉무비 주인공들의 연기 관습을 멋지게 정형화했다. 로버트 헤이즈의 뒤를 이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후반까지 스풉무비의 황태자로 활약한 것은 역시 <에어플레인> 출신의 레슬리 닐슨이다. 그는 주커 형제의 <총알탄 사나이>를 통해 일급 스타로 떠오른 뒤 90년대 내내 <리포제스트>(1990), <못말리는 드라큐라>(1995), <스파이 하드>(1996) 등의 스풉무비에서 자신의 연기를 복제했다. 로버트 헤이즈와 레슬리 닐슨이 멜 브룩스와 주커 형제의 페르소나로서 80년대와 90년대를 주름잡았다면, 2000년대의 새로운 스풉무비 스타는 <무서운 영화> 시리즈의 안나 패리스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더욱 진지해지는 그녀의 바보 연기는 속편으로 가면서 점점 사라져가는 웨이언스 형제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결코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안나 패리스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그렉 아라키의 <스마일리 페이스>를 통해 스풉무비에서 배운 유머감각을 정극에 교접하는 능력도 멋지게 증명했다. <무서운 영화> 시리즈가 끝나야 비로소 진정한 재능을 인정받을 재원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