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오키나와 공항에 세워진 관광버스에 12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만 목적은 같다. 빚이 늘어나 더이상 감당할 수 없자 보험금이라도 타서 가족들을 편하게 먹여살릴 계획이다.■ Review 일본엔 ‘죽음의 미학’이라는 전통사상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등의 작가들은 아름답고 숭고한 죽음의 이미지에 자신을 기꺼이 맡긴 인물들. <자살관광버스> 역시 얼핏 보기엔 이러한 죽음의 미학을 계승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영화 원제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살다’라는 의미)를 패러디한 <안살아>다. 그런데 영화를 보노라면 이같은 첫인상은 점차 누그러진다. 죽음을 결심한 어느 인물 군상의 여정을 통해, 삶이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거다. <자살관광버스>는 근엄한 포즈를 취하지만 사실은 호들갑스럽기 그지없는 블랙코미디다.
<자살관광버스>엔 무기력한 남성들이 나온다. 하나같이 이들은 삶에 지쳐 있고 돈에 쪼들려 있다. 예컨대 더이상 살아갈 의지를 상실했다. ‘내 헛된 죽음으로 가족들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기리라. 그러면 뜻있는 삶이 될 거 같다’라고 결심한 이들은 죽음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데 그나마 일이 풀리질 않는다. 예쁜 아가씨가 우연하게 동행하면서, 술집과 가라오케 등을 전전하고 흥청망청 즐기는 동안 12명의 승객은 ‘음, 벌써 죽기엔 좀 아까운데’라는 생각을 간직하게 된다. 일순 변심한 거다. 이에 맞서 죽음의 사절단을 계획한 버스기사는 예정된 대로 일을 진행하자며 부추긴다. 이렇듯 <자살관광버스>는 만화적 상상력과 일본식 코미디의 기발함, 영화를 통한 약간의 계몽적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영화감독은 시미즈 히로시. 기타노 다케시의 조감독 출신인 그는 여러 면에서 ‘사부’인 기타노 감독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다. 오키나와에서 영화를 촬영했고 작품에 생략과 절제의 미학을 녹여냈다는 점은 기타노 영화와 닮은꼴이다. 시미즈 히로시 감독은 <자살관광버스>에 대해 “영화에 스며 있는 안타까움과 슬픔은 누구나 한번쯤 느꼈을 만한 종류의 것이다. 관객도 공감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자살관광버스>는 기타노의 수제자가 과시하는 기타노 영화의 축소판이다. 유사품이라도 그 호방한 익살은 충분히 즐겁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