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시네바캉스 서울’이 여름휴가를 고전영화와 함께 보내자고 조른다. 고전이 좋은 이유는 안심할 수 있어서다. 오랜 세월 검증받았기에 취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즐길 만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산으로 시간을 투자하기에 아깝지 않다는 말씀. 8월9일부터 15일까지 다섯편의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명화극장’에서는 아이스크림 골라 먹듯 맘에 드는 영화를 골라 보면 될 듯하다. 비록 다섯편밖에 되지 않지만 스릴러에서 로맨틱코미디까지 면면이 알차다.
우선 캐롤 리드의 <제3의 사나이>. 하수구 추격장면과 마지막 가로수길 장면이 인상적인 <제3의 사나이>는 미국인 소설가 홀리 마틴(조셉 코튼)이 친구 해리 라임(오슨 웰스)을 만나러 빈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라임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그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눈치챈다.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 캐롤 리드의 연출 덕이겠지만 안톤 카라스의 음악과 오슨 웰스의 연기가 더 유명하다. 제3회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빌리 와일더의 영화는 ‘시네바캉스 서울’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데 제격이다. 탁월한 코미디 감각을 지닌 이 영리한 감독은 풍자와 냉소조차 사랑스럽게 변주해 웃음을 만들어내곤 한다. 잭 레먼과 셜리 매클레인의 환상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당신에게 오늘 밤을>은 그의 사랑스러운 코미디영화 중 하나이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수다스런 대사, 떠들썩한 분위기, 복장도착들이 빌리 와일더표 영화임을 증명한다. 순진한 파리 경관 네스터(잭 레먼)가 성매매 밀집 구역인 카사노바 호텔 거리로 전근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경찰과 매춘조직의 담합을 고발하다가 해고된 네스터는 초록색 리본, 스타킹, 속옷으로 치장한 거리의 여인 이르마(셜리 매클레인)를 만나게 된다. 네스터는 이르마의 매춘을 지켜볼 수 없어 깜찍한 변신을 시도하지만 일은 점점 커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빌리 와일더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으며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준다(매춘, 살인, 감옥, 탈옥을 다룬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누가 또 만들 수 있겠는가).
니콜라스 뢰그 감독의 <워커바웃>은 카메라 감독으로 데뷔한 이력을 가진 감독이 만든 영화답게 호주의 자연경관을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이다. ‘워커바웃’은 호주 원주민 소년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족의 성인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지로 나가 몇달간 생활하는 통과의례를 일컫는 말. 영화는 아버지에 의해 오지에 고립되게 된 남매가 워커바웃 중인 원주민 소년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담았다. 감독은 누구나 쉽게 도식화할 수 있는 삭막한 도시의 문명과 건강하고 강인한 원주민의 생활(자연의 모습)을 보란 듯이 대비해서 보여준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굉장한 흡인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올해 3월, 97살로 생을 마감한 줄스 다신 감독의 <리피피>도 놓칠 수 없다. <리피피>를 보며 <오션스 일레븐>을 떠올렸다면 영화 제대로 봤다고 말할 수 있다. <오션스 일레븐>은 줄스 다신 감독의 <리피피>에 대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마주다. 범죄영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리피피>는 대사도 음악도 없이 무성으로 진행되는 30여분간의 보석 절도 시퀀스로 유명한데, 실제 보석 절도를 관음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마찬가지로 올해 세상을 떠난 감독이자 배우 시드니 폴락의 <야쿠자>도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2차대전 뒤 일본에서 에이코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 해리 킬머가 그녀와의 사랑에 실패해 일본을 떠났다가 야쿠자에게 딸을 납치당한 친구를 위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시드니 폴락의 영화답게 스토리와 인물의 캐릭터가 분명하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다섯편의 명화를 스크린으로 만나고 싶은 분들은 ‘명화극장’ 영화제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 문의: 02-741-9782)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