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하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어려운 게 공포영화다. 잔혹하고 엽기적인 장면의 연출은 오히려 쉬운 반면에 관객을 피해자의 처지로 자기 문제화시키는 것은 항상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008 서머 호러 판타지’가 8월1일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선보이는 여섯편의 영화 <버그> <슬리더> <렛미인> <악몽탐정> <블러디 아일랜드> <보더랜드> (극장에 따라서는 <렛미인>과 <보더렌드>를 제외한 네편)는 동시대적인 사회 부조리를 농축하여 밀어붙이는 영화들이다. 부천영화제를 찾았던 아름다운 호러 <렛 미 인>과 DVD 해외타이틀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보더랜드>를 제외한 4편의 영화를 미리 만나보자.
거장 윌리엄 프리드킨의 귀환! <버그>
걸프전에 참전하여 실험대상이 되었다고 믿는, 겉보기에 유순하지만 내면에 광신적 믿음이 들끓는 한 사내. 남편의 가석방 소식과 실종된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감시 강박에 시달리는 하층민 여성. 우정 어린 동거로 시작된 외로운 두 남녀의 생활은 어처구니없지만 개연성있고, 불쌍하지만 섬뜩한 환상의 세계를 서서히 합의하고 건설해나간다. 영화는 죽음에의 충동으로 사람들을 내모는 사회를 고발함과 동시에, 사회 저항자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 또한 고발한다. 호러라기보다 스릴러에 가까운 <버그>는 <엑소시스트>와 <프렌치 커넥션>을 만든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B급 공포영화의 미덕을 한꺼번에! <슬리더>
B급영화의 미덕들로 영양분이 넘치지만 특수효과도 만만치 않은 영화다. 떨어진 운석에서 나온 에일리언 유충이 인간을 숙주로 삼아 온 마을 사람들을 좀비로 만든다. 기상천외한 엽기적 장면과 그 정도의 지나침이 유발하는 웃음, 본질적으로는 순박한 줄거리. 호러로 코드화된 촌철살인의 풍자가 쉬지 않고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토록 불결하고 잔인한 슬래셔영화가 코믹하고 심지어는 “귀엽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끔찍한 환경 속에서 건실하게(?) 로봇처럼 싸우는 주인공들의 외양이 슬랩스틱코미디의 분위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트로마 스튜디오에 몸담으면서 <트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하고 <톡식 어벤저4>의 배우로도 출연했던 제임스 건의 농축된 ‘B급 엽기파워’가 제대로 폭발한 작품이다.
동시 자살 문화에 대한 섬뜩한 고찰 <악몽탐정>
정보화 시대의 동시 자살 문화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함께 자살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알게 된 ‘제로’에게 전화를 하면 암호화된 소리가 전달되어 전화 건 이의 꿈자리를 장악한다. <철남> <쌍생아>의 쓰카모토 신야 감독의 연출작으로, 마츠타 류헤이와 안도 마사노부라는 청춘 스타를 내세웠다. 영화는 마치 <매트릭스>처럼 타인의 꿈을 무대로 악몽탐정과 제로가 싸우지만 영화의 미장센은 사뭇 음침하고 몽환적이다. 영화가 하는 질문은 두 가지다. 현실에서 자살하고자 하는 당신은 과연 악몽을 꿈꾸다 죽는 것에도 기꺼이 동의할까? 육신의 생과 사를 가르는 진정한 무대가 꿈이라면 정작 꿈속에서는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당신을 어떻게 설명할 텐가? 다음으로 자살이란 거기서나마 공동체적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숭고한 것인가? 자살의 순간에서조차 인간은 착취를 통한 영생의 신화를 추구할 만큼 악한 존재가 아닌가?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며 국내 관객을 찾은 바 있다.
공포스럽고 합리적인 영국식 훈육 호러 <블러디 아일랜드>
징벌 차원에서 무인도에 도착한 소년원 사내아이들은 순례자인 소녀들과 만난다. 미지의 살인자에게 쫓기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13일의 금요일>과 <배틀 로얄>과 합친 다음, 날선 부분을 영국적 합리성으로 말끔하게 가다듬었다. 덕분에 액션신으로 연명하는 다소 진부한 오락영화가 된 느낌이다. 제이미 벨 주연의 전쟁 호러 <데스 워치>를 연출했던 마이클 J. 버세트 감독의 두번째 작품으로 <디센트>에서 죽음의 동굴탐사에 나섰던 여배우 알렉스 레이드가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