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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호러영화 <카핀>
문석 2008-07-23

깜짝 놀라 벌벌벌 지수 ★★☆ 타이에도 <전설의 고향>이 지수 ★★★★ 아난다 에버링엄 띠용 지수 ★★★☆

불교의 세계에서 절대적 탄생과 죽음이란 없다. 인간이 현세에서 저지른 업(業)에 따라 죽은 뒤 환생해서 여섯 세계 중 한곳에서 내세를 누리게 되며, 다시 그 내세의 업에 따라 그 다음 세계를 겪는다는 윤회의 고리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한 탄생은 곧 죽음이요, 죽음은 곧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한 우주의 수레바퀴를 거스르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특별한 의식을 통해 죽음을 회피해보려는 <카핀> 속 주인공들이다. ‘논 로엥 사도르크로’라는 이름의 이 의식은 승려들이 경을 읽는 가운데 사람들이 관 속에 들어가 뚜껑을 닫은 채 일정 시간을 보내는 것. 사람들은 이 의식을 거치면 사신(死神)을 속이게 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폐암에 걸린 수(막문위)와 혼수상태인 여자친구를 두고 있는 크리스(아난다 에버링엄) 또한 각각 자신과 연인의 죽음을 막아보려는 마음으로 이 의식에 참여한다. 의식을 끝낸 두 사람 앞에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펼쳐진다. 수의 폐는 깨끗해졌고 크리스의 여자친구도 완쾌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의 약혼자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잠시 혼수상태에 빠졌던 크리스는 수시로 나타나는 비참한 모습의 여성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카핀>은 정통 호러라고 부르긴 어려운 영화다. 편집과 사운드의 효과로 객석의 비명을 짜내거나 스크린을 핏물로 그득하게 채우는 대신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정면돌파함으로써 내면적 공포감을 자아내려 한다. 한 존재의 탄생은 다른 존재의 죽음을 의미하며, 마찬가지로 어떤 존재의 죽음은 다른 이의 탄생을 의미한다는 불교적 세계관에 기반하는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무서움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두 주인공이 겪는 정체 모를 두려움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결국 죽음 저 너머의 세계를 끌어안지 않는 한 그 공포감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에카차이 우에크롱탐 감독이 아버지의 죽음 뒤 슬픔을 겪으면서 구상을 시작했다는 <카핀>은 어둠 속에서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픈 호러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실망감을 줄지 몰라도 탄탄한 영화적 틀과 습기찬 멜로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는 크로스오버 호러영화로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카핀>을 보는 관객은 차라리 스스로가 ‘논 로엥 사도르크로’를 체험 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tip/ 에카차이 우에크롱탐 감독은 싱가포르, 중국, 미국, 말레이시아, 타이 등에서 100편이 넘는 연극과 뮤지컬을 만들어 <아시아위크>에서 사회·문화 부문의 새로운 20명의 리더 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했던 인물. 무대 경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그는 여성으로 성 전환한 킥복서의 실화를 다룬 <뷰티풀 복서>, 싱가포르의 집창촌을 배경으로 한 <플레저 팩토리> 등을 만들어 세계적 주목을 받아온 타이영화계의 새로운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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