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맥어보이가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툼누스씨로 출연했을 때를 기억하시는지요? 전 원작을 읽어서 툼누스가 어떤 캐릭터인지, 이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판으로 분한 제임스 맥어보이가 나와서 조지 헨리가 연기하는 루시 페번시 앞에 섰을 때는 조마조마하더군요. 만약 근처에 정상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와 “당장 그 아이한테서 떨어져! 이 변태**야!”라고 호통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전 아직도 왜 맥어보이가 툼누스 역으로 캐스팅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툼누스는 관객을 굉장히 불안하게 합니다. 지나치게 유혹적이고 모호하지요. 여담이지만, 조지 헨리는 분장한 맥어보이를 세트에서 처음 보고 정말로 무서워했답니다.
<어톤먼트>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어톤먼트>는 철없는 아이의 편견이 갈라놓은 연인들의 비극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어톤먼트>의 이야기를 다 믿으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13살의 브라이오니나, 노인이 되어 마지막 소설을 쓰는 브라이오니나, 진상을 완전히 모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들의 내면을 직접 읽을 수 없는 영화에서는 더욱 그렇고 제임스 맥어보이가 캐스팅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가 연기하는 로비 터너는 암만 봐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비밀이 꼭 미성년자 어린아이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아니라도 해도요.
비슷한 아우라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흐릅니다. <라스트 킹> <페넬로페> <비커밍 제인>… 네, 그는 맥베스도 연기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그대로가 아니라 현대 스코틀랜드를 무대로 한 요리사 버전 맥베스였지만요. 어느 쪽이건 그는 완벽하게 악당도 아니고 완벽하게 믿음직한 주인공도 아니며 연인으로도 늘 불안합니다. 이런 남자와 연애를 시작한다면 재미있을 수는 있겠지만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지지는 않겠죠.
맥어보이의 불안함은 일단 그의 외모에서 기인합니다. 커다란 눈의 예쁘장한 얼굴과 가냘프고 작은 체형 덕에 그는 그렇게 남성적으로 보이지는 않죠. 내년이면 서른이지만, 실제 나이보다 늘 몇살 어려 보이고요. 이런 남자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스테레오타입은 예상 외로 강하고 보편적입니다. 믿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는 어린애라는 거죠. 그 사람이 글래스고의 터프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스코틀랜드인이라면 더욱 믿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 가냘픈 느낌까지 위장일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그러냐고요? 아뇨, 이 모든 건 스테레오타입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맥어보이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이 어떤지 어떻게 압니까? 하지만 배우라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외모와 이미지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하고 지금까지 맥어보이는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조금 과격하게 일반화시킨다면, 그는 유명한 틴에이저 캐릭터를 연기한 적 없는 틴에이저 전문배우입니다. 자기 확신의 결여, 시스템과 ‘어른들’에 대한 증오, 비겁함과 냉소는 모두 일반적으로 틴에이저 캐릭터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죠. 그는 이것을 일반 성인의 캐릭터들 안에 넣어 변주합니다.
<원티드>의 맥어보이도 그런 면에서 이상적으로 캐스팅되었습니다. 그가 연기한 웨슬리 깁슨은 애어른이지요. 시스템 안에서 단 한번도 성숙한 성인처럼 행동한 적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인의 책임감을 완전히 날려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전문 킬러가 되는 것이죠. 마피아의 머리에 총알로 구멍을 내면서 발랄하게 ‘미안해요!’를 외치는 그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와닿는 건 그냥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