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불일치의 당황지수 ★★★★ 이상우의 백치연기지수 ★★★ 모녀 삼대의 코믹연기지수 ★
나래(이다희)네 집은 여자들로 북적거린다. 치매에 걸려 애가 된 할머니 간난(김수미)과 억척스러운 과일장수 엄마 남희(심혜진), 그리고 아나운서를 꿈꾸며 엄마가 번 돈을 학원비로 빼돌리기에 바쁜 딸 나래. 모녀 삼대가 복닥거리며 살고 있는 이 집에 어느 날 남희의 트럭에 치일 뻔한 준(이상우)이 찾아온다. 준은 어딘가 모자라지만 빼어난 외모를 가진데다 마술 등의 잡기에 능한 남자. 잘생긴 오빠의 등장에 간난은 손뼉치며 좋아하고 나래는 낯설어하지만, 남희는 준을 불쌍히 여겨 그와 함께 과일장사에 나선다. 준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남희는 점점 억척아줌마가 아닌 여자로서의 자신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나운서로 향하는 길에 번번이 장애물을 만나는 나래와 그런 딸을 지켜보는 남희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애꿎게도 불화의 화살이 준에게로 날아온다.
<흑심모녀>란 제목에서, 그리고 세 모녀의 캐릭터를 코믹하게 묘사해놓은 예고편에서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한 남자를 놓고 세 모녀가 쟁탈전을 벌이는 이야기, 그게 아니라면 한 남자가 세 모녀를 차례대로 접근해 각각의 로맨스를 벌이는 <누구나 비밀은 있다>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 측면에서 부각된 이미지와 달리 <흑심모녀>는 잔잔한 가족영화에 가깝다. 영화는 어느 착한 손님이 먹고살기 바쁜 가족에게 사랑을 되찾아주는 동화 같은 이미지로 구성됐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묘사된 시골 풍경 속에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 이웃집 노총각이 애정의 뜻으로 바치는 소박한 꽃다발 등이 채워졌다. 또한 준의 자상한 보살핌에 마음이 설레는 남희의 심리도 그럴듯하다. <흑심모녀>의 원제이자, 극중에서 준이가 남희의 트럭에 써놓는 글귀인 ‘사랑을 배달합니다’가 다소 밋밋할지언정 걸맞은 제목일 듯. 종종 맥락없는 유머들이 등장하지만 포복절도하고픈 코미디가 아닌 가족영화로 본다면 <흑심모녀>는 전원드라마로서 나름 충분한 의미(재미가 아닌)를 지닌다. 물론 제목이 아니라 이야기의 밀도에 더 신경쓰는 게 좋을 법했다.
Tip/ 드라마 <주몽>의 ‘모팔모’ 이계인이 극중에서 남희를 짝사랑하는 쌀집아저씨로 출연한다. 괜히 남희가 오가는 길을 가로막거나, 남몰래 그녀의 트럭을 세차하고 대문 앞에 꽃바구니를 놓고 가는 남자다. 아마도 그의 연기인생 사상 가장 소심한 연기를 해야 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