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요맘때 나는 특정 아시아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칸영화제와 마켓에서 몇편이나 상영되는가를 기준으로 누가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뜨는 배우인가를 가늠하는 칼럼을 썼다. 여섯명의 배우가 유독 돋보였으니, 타이의 아난다 에버링엄, 중국의 판빙빙, 일본의 마쓰다 류헤이, 홍콩의 고천락과 한국의 정경호와 박원상이 그들이었다.
올해 칸에는 100편이 넘는 아시아영화가 상영됐다. 대략 그 삼분의 일인 35편은 일본영화였다. 지난 한해 500여편의 영화가 만들어진 일본영화산업의 규모로 볼 때 타당한 비율이다. 그외 한국영화 19편, 중국과 타이 각각 14편, 홍콩 8편, 대만 4편, 싱가포르 3편 그리고 한두편인가의 영화가 나머지 아시아 지역의 영화였다.
이번에 나는 방법을 단순화해서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들만 고려하기로 했다. 그렇게 볼 때, 단지 두명의 아시아 배우만 두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홍콩의 임달화와 일본의 가가와 데루유키다. 그러나 홍콩의 홍금보 역시 언급될 자격이 있다. 마켓에서 상영되는 영화 두편에 출연했고 다른 한편이 마지막에 취소되었지만, 왕가위가 재편집한 <동사서독: 리덕스>의 액션을 감독했으니 말이다.
올해 42살인 가가와는 내가 칸에서 본 최고의 영화,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에서 경기침체로 직장을 잃은, 무너져가는 가족의 아버지를 연기했다. 블랙코미디인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 가가와는 대만과의 합작영화인 <티 파이트>(Tea Fight)와 옴니버스영화 <도쿄!>의 봉준호 감독의 섹션에 피자 배달 소녀와 사랑에 빠진 히키코모리로 나온다.
53살의 임달화는 처음으로 제작자로 변신, 유분두에 의해 홍콩을 마치 중국 본토의 도시처럼 찍은 <오션 플레임>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칸에서 김기덕의 <나쁜 남자>에 비견되었지만, 스타일 면에서 유럽과 일본영화에 더 가깝다. 임달화는 액션영화 <탈수>와 두기봉의 <문작>에서 주연을 맡는 데 더해 <오션 플레임>에서 타락한 경찰로 모습을 드러낸다.
두편의 영화에 출연한 스무명가량의 배우 중 지난해에도 역시 이 리스트에 들었던 배우는 단 한 사람, 27살의 아난다 에버링엄이다. 그는 논지 니미부트르의 멋진 타이 환상 역사극 <랑카수카의 여왕들>과 에카차이 우에크롱탐의 다소 실망스러운 영어공포영화 <관>(The Coffin)에서 주연을 맡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바쁜 배우임에 틀림없는 에버링엄은 거의 20년 만에 만들어진 첫 라오스영화를 포함해 올해 타이 극장에서 개봉예정인 영화만도 여러 편이다.
이런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보면 중국의 루유라이(<빨간 콤바인>과 <니팅(Knitting)>), 일본의 17살 여배우 다니무라 미쓰키(<신의 퍼즐>과 <오로치: 블러드>), 21세 타이 배우 나모 통쿰네드 등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젊은 배우들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칸에서 한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홍콩 배우 중 가장 젊은 사람이 46살의 베테랑인 유덕화라는 사실은, 이제 막 첫 영화를 찍는 신인들을 더 선호하는 요즘 그쪽 영화계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인 듯 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온 서른살의 하정우는 내가 칸에서 본 영화 중 두 번째로 최고인 <추격자>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그가 출연한 <비스티 보이즈>는 마켓에서 상영됐다. 이윤기의 새 영화 <멋진 하루>에서 하정우는 전도연의 상대역을 연기하며, 이 영화는 내가 2008년 꼭 보아야 할 영화 일순위로 뛰어 올랐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케 그는 지난 2년간 내 스타 포착 레이더망을 피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