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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 4> 3인3색 읽기 ① 감독 스필버그로 읽기
김혜리 2008-06-03

웰컴 투 스필버그 테마파크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현대의 신화 구실을 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영화관이 TV의 공세를 이기고 대중문화의 신전 자리를 지킨 데에는 두 사람의 공이 크다. 그리고 막 귀환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루카스와 스필버그가 유일하게 기획/제작자와 감독으로 결합한 공식 합작품이다(루카스 영화에 스필버그가 보탠 비공식적 도움이나 스필버그 영화에 투입된 ILM의 테크놀로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1998년 이후 감독으로서 두 사람은 자못 대조적인 여행을 했다. 루카스는 세편의 <스타워즈> 프리퀄을 통해 70, 80년대에 자신이 구축한 신화를 붙들고 세공에 몰두했다. 반면 스필버그는 <A.I.> <캐치 미 이프 유 캔> <뮌헨> <우주전쟁>을 내놓으며 진화와 확장을 계속했다. 90년대 초 일찌감치 시동을 건 프로젝트라 해도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하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19년 만에 착수한 스필버그의 궁리는 단순치 않았으리라. 관객의 추억을 성실히 복원하는 동시에 변화한 시대와 자아를 수용해야 했을 테니까. 이 글에서는 감독 스필버그의 자리에서 4편을 살피기로 한다.

우선, 복귀한 영웅 인디아나 존스는 나이 먹고 지쳤을 뿐 그때 그 남자 맞다. 고고학자와 터프 가이라는 양면이 온전히 융화되지 않는 캐릭터로서의 결함마저 그대로다. 조지 루카스의 머리에서 탄생한 인디는 스필버그 영화가 배출한 대중문화 아이콘들- 공룡, 상어, E.T.- 중 유일한 인간이다(스필버그가 인간에게서 ‘위대함’을 보는 건 대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다). 부자 관계에 서툰 면을 제외하면 인디는 전형적인 스필버그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기엔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인디의 가장 가까운 혈연은 한 솔로다. 과연 4편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혈통을 못 박듯 <스타워즈>의 단골 대사 “느낌이 안 좋은걸”(I have a bad feeling about this)을 뇌까린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배경은 전작 <최후의 성전>(1989)으로부터 19년을 넘긴 현실의 달력을 에누리없이 수용한 1957년이다. 새로운 배우를 기용해 프리퀄을 만들거나 해리슨 포드를 명퇴자로 밀어냈다면 달리 방도가 있었겠지만, 스필버그는 해리슨 포드와 더불어 영화가 순순히 나이 먹는 쪽을 택했다. 덕택에 영화는 냉전이 빙점에 달한 까다로운 지점에 착륙했다. 1편과 3편의 나치가 폭력과 조롱을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는 악당이었던 것에 비해 4편의 소련군은 허깨비처럼 존재감이 희박하다(게다가 표적이 되는 보물 역시 비물질적이다). 인종주의적 묘사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구설수에 올렸던 제3세계 주민들은, 존스 일행과 충돌하지 않는다. B급영화의 단순한 쾌락과 모험 장르의 허풍을 계승하는 와중에도 4편의 인물 묘사는 조심스럽다. 나치를 골탕 먹이는 호탕한 카우보이였던 인디 본인도 매카시 광풍에 휘말려 교수직을 잃을 처지다. 80년대 3부작에서 존스 박사는 지성의 ‘모자’를 눌러쓴 도굴범이었다. 오지의 보배를 찾아나서는 그의 동기는 이타적 명분과 탐욕의 혼합이었다. 한데 4편의 인디는 스스로 떨쳐 일어나지 않는다. 반공 마녀사냥을 피해 조용히 살러가다가 오랜 친구인 옥슬리 교수가 위험에 빠졌다는 전갈을 받고서야 모험에 말려든다. 보물 찾는다는 핑계로 귀중한 유적을 다 때려부수는 예의 파괴행각(?)도 덜하다.

그래서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재미가 미지근한가? 글쎄. <툼레이더> <미이라> <내셔널 트레져>가 박스오피스 정상을 탐험하고, 인디보다 훨씬 지적인 인상의 도상학자가 활약하는 <다빈치 코드>까지 나온 지금이지만 이 질문의 답은 전적으로 세대와 취향의 문제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스필버그의 이력에서 차지하는 지점을 매우 담백한 방식으로 상기시킨다. 1편 <레이더스>에 착수할 당시 스필버그는 대작 <1941>의 실패로 스튜디오의 신용을 잃을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레이더스>는 그가 정해진 예산 안에서 얼마나 효율적인 엔터테인먼트를 만들 능력이 있는지 다시 증명하는 마당이었고 스필버그는 5분 내에 영화적 서스펜스를 만들고 해소하는 최고의 기본기를 과시하며 3부작을 시퀀스가 곧 존재 이유인 영화로 완성했다. 다시 말해 <인디아나 존스>는 연신 장애물을 뛰어넘는 경주다. 모든 공간은 차라리 함정과 덫이고 그 뒤에는 핀볼 게임기 설계자의 미소가 비친다. 4편 역시 ‘인디아나 존스’ 테마파크의 유명 놀이기구- 징그러운 동물떼, 자동차 위 격투, 채찍 액션- 등을 꼼꼼히 챙기는 데에 자족한다. 두대의 차 위에서 벌이는 검투와 들판을 덮은 개미떼 같은 구경거리도 어디까지나 전통적 항목의 업그레이드에 충실하다. 여기서 스필버그가 도모하는 바는 극복이 아니라 확인이다. 유대교, 힌두교, 기독교의 보물을 미끼삼아 여기까지 전진해온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이르러 이윽고 <미지와의 조우> <A.I.> <우주전쟁> 그리고 TV영화 <테이큰> 같은 스필버그의 ‘메시아 영화’와 포개진다. 이 화려한 어드벤처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이미지가 숱한 액션스펙터클이 아니라,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핵폭탄 실험용 마네킹 마을과 절멸의 버섯구름인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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