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90년대 고우영, 이두호, 윤승운, 오세영 등이 그려낸 한국 전통물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으며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한 장르로서 자리잡았었다. 그러나 일본 만화의 직수입이 시작된 1990년대 중반부터 전통물이 설 자리는 줄어들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그 명맥조차 끊길 위기에 처했다. 그런 상황에서 <춘앵전>과 같은 만화의 등장은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천일야화>로 ‘2006년 하반기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한 한승희, 전진석 콤비가 철저한 자료조사와 함께 탄생시킨 <춘앵전>은 여성 국극의 창시자 임춘앵을 모델로 한 독특한 퓨전순정만화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사주팔자가 모두 ‘양’(陽)인 양팔통의 사주를 갖고 태어난 여장부 임춘앵. 그녀가 초창기 연예기획사라 할 수 있는 ‘권번’에 들어가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춤과 소리에 능한 명기로, 그리고 전통을 재창조해 진정한 예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순정만화의 외피 속에 절묘하게 버무려냈다. 순정만화의 전형과는 백만광년 정도 동떨어진 소재와 배경이지만 세련된 그림체와 소녀들의 연심을 자극하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소녀 순정지 <윙크>에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끊어질 뻔한 전통물의 바통을 순정만화가 이어받은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잊혀져가는 한국 전통문화를 만화로 승화시키려는 젊은 작가들의 열정과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