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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아이언맨>과 청문회

<아이언맨>

<아이언맨>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개봉 2주 만에 한국에서 전국 300만 관객을 넘었고 미국에선 1억7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평단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스타라 말하기 어색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한 것이 대성공으로 판명받았고 만화적 감성과 코미디 감각이 조화를 이룬다는 평이 많다. 대단한 감흥을 얻은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즐겁게 봤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아머 슈트를 개발하고 시험하는 장면들이었다. 아이언맨으로 싸우는 액션시퀀스가 많지 않은 대신 <아이언맨>은 발명과 실험의 과정을 코미디 리듬에 실어 비중있게 그린다. 그 과정이 엉터리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나 영화적으로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그럴듯하다는 실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특수효과로 도배되는 슈퍼히어로물에서 이런 세심한 묘사는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스파이더 맨> 1편과 2편에서 피터 파커의 가난하고 궁상스러운 삶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배트맨 리턴즈>에서 브루스 웨인이 적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아파도 비명 한마디 못하고 잽싸게 도망치는 장면도 슈퍼히어로를 평범한 인간과 가깝게 만드는 데 성공한 예다. 확실히 어떻게 디테일을 묘사해서 리얼리티를 확보할 것인가는 이런 영화에서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다. <배트맨과 로빈>이나 <디 워> 같은 영화가 특수효과를 전시하는 데 집중하느라 리얼리티를 놓치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쇠고기 문제로 뜨거운 요즘, FTA 국회청문회를 보다가 경악했다.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이 한-미 FTA는 당연히 해야 할 좋은 일인 것처럼 FTA는 빼고 광우병 쇠고기만 안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지금 아니면 언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보나 싶어서 그랬을 텐데 다들 목소리를 높이고 다그치는 데 정작 당하는 장관들이나 보는 사람들에겐 긴장감이 안 생긴다. 광우병 쇠고기가 문제인 건 알지만 새로운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 없는데다 정작 논쟁의 초점인 한-미 FTA에 관해서는 누구 하나 제대로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의 몰입을 유도할 만한 디테일이 없기에 청문회는 <디 워>처럼 공허했다. 이미 봐온 특수효과이다보니 아무리 반복해도 식상하고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가 문제인 건 삼척동자도 아는 지금 누군가는 쇠고기 협상이 FTA와 맺는 관련성을 이야기하고 한-미 FTA의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게 아닐까?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을 보여주는 혜안이나 설득력있는 디테일이 없고 과장된 시각, 음향효과만 두드러지다보니 삼류영화를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청문회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한-미 FTA 비준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는 것도 문제다. 각개격파가 이뤄지듯 처음엔 스크린쿼터를 내줬고 다음엔 쇠고기를 양보했다. 엄청난 양보를 했는데 그게 고작 FTA의 선결조건이었으니 정작 협정이 비준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암담한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국회의원들의 호통 속에 한-미 FTA는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이 되고 있다. 국회가 이 정도로 흥행감각이 없으니 그걸 생중계하는 TV 제작진도 골치 아팠을 거 같다. 정곡을 찌르는 스타 국회의원이 나와야 방송사도 신이 날 텐데 말이다. 여기 비하면 촛불집회에 나온 10대 소녀들의 외침은 캐릭터의 신선한 힘만으로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생중계를 하려면 이런 걸 해야 관객이 몰리지 않을까?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같은 것의 반복은 볼륨을 높인다고 설득력을 낳지 않는다.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한다.

P.S. 정훈이 만화가 막을 내리자 많은 독자분이 <씨네21> 홈페이지에 댓글로 서운함과 아쉬움을 표했다. 정훈이 만화 후속으로는 마인드C와 조경규 작가가 격주로 ‘영화 vs 만화’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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