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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페르세폴리스>의 매력

“배우가 나오지 않으니까 애니메이션은 영화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언젠가 김지운 감독이 이렇게 말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극영화와 다른 자세를 취한다. 애니메이션과 극영화는 같은 만큼 다른 매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둘의 차이는 무엇보다 배우의 유무다. “디즈니는 좋겠다.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리면 되니까.” 앨프리드 히치콕이 이렇게 말했다는데 그렇다고 히치콕이 애니메이션의 연기를 진짜 선망했을 거란 생각은 안 든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극영화는 좀더 복잡한 감정연기를 요구한다. 인물의 얼굴에 바짝 붙어 움직이는 다르덴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 같은 걸 애니메이션이 구현할 수 있을까? 그럴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극영화보다 열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상으로 빚어낸 캐릭터의 개성이나 액션 혹은 판타지를 표현하는 영역에서 애니메이션은 극영화보다 효과적이다. 당연히 각각의 장점을 취하려는 이종교배의 시도가 생겨났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베오울프>는 실제 배우를 꼭 닮은 3D 캐릭터까지 만들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진짜 인간의 깊이와 정서를 표현했다고 보기 힘들다. 개봉을 앞둔 <스피드 레이서>는 <베어울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종교배를 시도한 경우다. 이 영화의 레이싱 장면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장점을 잘 결합한 예인데 그럼에도 어딘가 허전하고 미진한 느낌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페르세폴리스>를 보게 됐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여성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다. 1978년부터 16년간 이란에 휘몰아친 정치적 격변을 담고 있는데 그림체나 화법은 전혀 다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카하다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와 닮았다. 애니메이션 하면 판타지를 연상하기 쉽지만 <페르세폴리스>는 소재로만 보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이다. 자유분방한 표현기법이 무색할 만큼 사실적인 이야기이며 극영화가 아니라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야 할 방대한 정보량을 쏟아내는 작품이다. 요즘 애니메이션이 선보이는 놀랄 만한 그래픽 효과를 배제하고 미니멀하게 그린 그림들이 이야기를 압축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이란의 근대화 과정부터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생소한 정치적 이야기를 쏟아붓는데도 <페르세폴리스>는 관객의 귀가 아니라 마음까지 훔친다. 평범한 한 소녀의 시점에서 역사와 개인사의 교차점을 섬세하게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페르세폴리스>를 보면 애니메이션의 장점이 판타지나 액션 연출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애니메이션은 극영화를 뛰어넘는 장점이 있다. 진짜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깊이를 포기하는 대신 <페르세폴리스>는 물 흐르듯 유연한 극적 전개를 보여준다. 사트라피가 이란을 떠나며 가족과 이별하는 대목에서 보여주는 간결한 장면 연출은 보통의 극영화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문제에 있어서 <페르세폴리스>는 애니메이션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스피드 레이서>를 보면서 액션장면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도 애니메이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배우들이 나오는데 그렇다는 건 이 영화의 이종교배 시도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현란한 영상이 눈을 홀리지만 빈약한 이야기는 배우들의 연기를 납작하게 만든다. 반면 <페르세폴리스>는 애니메이션의 어떤 장점을 제대로 보여준다. 풍부한 이야기가 있기에 지극히 단순한 애니메이션 연기도 입체감을 갖는 것이다. 미학적 보수파에 속해서인지 몰라도 나는 첨단 영상의 새로움보다 구식 애니메이션의 순박한 매력에 끌린다. 애니메이션이 잘하는 것과 극영화가 잘하는 것이 아직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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