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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2] 刮目相對, 신성의 세계
씨네21 취재팀 2008-05-01

세계영화의 중심으로 곧 편입할 신예들의 명단

하나같이 다 낯선 이름들이다. 하지만 지난 한해 이런저런 영화제를 순회하며 세계영화의 중심으로 곧 들어올 신예들이라고 판명된 미래의 명단이다. 이중 당신을 매혹시킬 새로운 이름은 누구일까. 영화제의 재미란 낯선 이름과 처음 보는 영화에서 나의 공감을 발견해보는 것이기도 할 텐데, 그렇다면 다음의 작품들은 당신을 시험에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늘, 땅 그리고 비> The Sky, the Earth and the Rain 2008년 │ 호세 루이스 토레스 레이바 │ 110분 │ 칠레, 프랑스, 독일

잊을 만하면 사냥꾼의 총성이 귀를 찢는 어두운 숲과 변화무쌍한 하늘, 휑뎅그렁한 해변을 가진 칠레 남부 섬마을. 차가운 돌멩이처럼 응어리진 외로움과 무력감을 안은 채 살아가는 세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그들은 혼자 걷고 혼자 비를 바라보고 혼자 사과를 베어물고 혼자 라디오를 듣는다. 간혹 서로 속삭이는 위로의 말은 관객에게까지 들리지 않는다. 상점 판매원으로 일하며 병상의 어머니를 부양하는 안나는 친구인 베로니카 자매와 어울릴 때만 웃음을 떠올린다. 주인에게 도둑으로 의심받자 안나는 일을 그만두고 베로니카의 주선으로 독신남 토로의 가정부가 된다. 안나는 토로와 편안히 침묵을 공유할 만큼 가까워지지만 손을 쉽게 내밀지 못한다. 인간을 자연이나 정물처럼, 자연과 사물을 인간처럼 찍는 토레스 레이바 감독의 화면은 많은 거장들을 연상시키면서도 끝내 독창성을 견지한다. 모든 프레임은 감정과 조형미를 고려해 숨막히도록 치밀한 구도를 보여주며, 카메라 움직임은 표현의도로 충만하다. 감독은 <하늘, 땅 그리고 비>를 가리켜 “인간과 환경의 융합에 관한 영화”이며 “발로, 자동차로, 배를 타고, 또는 마음으로 하는 가상의 산책에 관한 영화”라고 요약한다. <하늘, 땅 그리고 비>는 삶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보편적 구원의 문제를 묻는 21세기 젊은 라틴아메리카영화의 고요한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2008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발라스트> Ballast 2008년 │ 랜스 해머 │ 96분 │ 미국

쌍둥이 형제의 자살 시도가 절반의 성공으로 끝을 맺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자살에 실패한 한명, 자살에 성공한 쪽의 아들과 그 어머니가 황량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요한 분투를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본다. 바라봄 그 자체가 영화로 가능한 최대치의 호의라는 듯 그 무엇에 대해서도 함부로 논평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지가 확연하다.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리듬 그 자체다. 다르덴 형제가 연상되는 핸드헬드, 내러티브와 비주얼상의 여백, 감정이 담긴 점프컷과 롱테이크 등은 미국 감독의 것으로는 믿겨지지 않는다. 선댄스영화제 역시 감독상과 촬영상으로 신인감독의 남다른 데뷔작에 손을 들어줬다. 더욱 재밌는 것은 연출, 각본, 제작, 편집을 겸한 랜스 해머 감독의 이력. <배트맨> 시리즈의 시각효과로 영화에 입문하여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연출부를 경험한 백인 감독의 ‘작가적인 포부’가 느껴진다. 실제 미시시피 지역에서 비전문 배우를 고용한 제작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트릭스> Tricks 2007년 │ 안제이 자키모프스키 │ 95분 │ 폴란드

소년 스테펙의 하루는 단순하다. 또래 친구는 없지만 누나를 따라다니고 비둘기 장수 곁을 얼쩡거리다 기차역에 놀러간다. 기차역에서 스테펙은 의식처럼 동전을 레일에 뿌리고 장난감 병정을 침목에 세우는데, 누군가가 동전을 주워가고 기차가 떠난 뒤에도 병정들이 넘어지지 않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고 있다. 소년이 바라는 행운은 오래전 가족을 떠난 아빠가 돌아오는 것. 매일 플랫폼에서 만나는 남자를 아빠라고 생각하고는 엄마와 만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몇번의 우연과 행운, 모험이 더해져 정말로 기적이 찾아온다. 우연이 잦으면 필연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트릭스>는 작은 트릭들로 우연과 필연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폴란드 소년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영화는 대부분 스테펙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소년의 뒤를 밀착해서 따르는 카메라 덕분에 종종 다큐멘터리 같다는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천진한 스테펙을 연기한 데미안 위는 4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코초치> Cochoch 2007년 │ 라우라 카르데나스, 이스라엘 카르데나스 │ 87분 │ 멕시코

멕시코 산악지대에 위치한 오지 마을. 라디오를 듣던 소년 에바리스토는 우연히 다른 마을에 사는 작은할아버지 내외의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그들은 약이 필요하다. 망설이던 에바리스토는 할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말 한필을 얻어 친구 토니를 대동하여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은 소년들에게 험난하고 신묘하기만 하다. 정말 잘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묻던 할아버지에게 말이 있으면 된다고 답했던 소년들은 도중에 말을 잃어버리고, 급기야 두 동무는 서로 헤어져 다른 곳을 헤매게 된다. 에바리스토의 여행과 토니의 여행이 한동안 각자의 길을 따라 그렇게 전개된다. 첫눈에도 비전문 배우라고 알아볼 만큼 자연스러운 얼굴을 지닌 멕시코 오지의 어린 소년 배우들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시종일관 순수함을 자랑한다. 이 영화에는 그 소년들과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착한 어른들의 만남 또한 주선되고 있다. 그리고 그 얼굴들만큼 순박한 산악의 풍경이 인물들을 감싸고 있다. <코초치>는 멕시코 소년들의 수수한 성장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