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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한편의 코미디, 프랑스를 덥히다

3월 극장가를 휩쓴 <웰컴 투 슈티>, 국가 전반의 화해 분위기 조성에도 도움

지난 3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은 영화는 바로 <웰컴 투 슈티>다. 슈티란 프랑스 북부 지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제 슈티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귀여움을 받는 지방 사람들이 됐다. 코미디 영화감독 대니 분이 만든 이 작품은 몇주 사이 프랑스영화계에서 가장 큰 흥행작이 됐고, 빙산처럼 떠서 <타이타닉>의 2천만 관객동원 기록 돌파를 향해 둥실둥실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계속 뜨다가는 <타이타닉>의 역사적 기록을 문제없이 깰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시대와 작품을 잘 연결해주고 있는, 그야말로 한눈에 반할 정도의 그런 작품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웰컴 투 슈티>는 프랑스 남부에 살다가 정반대에 위치한 전혀 매력없는 지역 노르 파드 칼레로 전임해온 한 우체국장의 모험을 그린다. 그는 북부 지역에 관해 온갖 선입견을 안고 부임해온다. 그는 북부 지방이 날씨가 엄청나게 추운 건 물론이고,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데다가 탄광에서 나오는 석탄에 시커멓게 그을린 촌사람들만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그의 새 직장동료는 그에게 미리 경고한다. “여기선 두번 운다. 이곳에 도착하면서 울고, 이곳을 떠나면서 울고”라고. 그도 그럴 것이, 도착 직후 적응기의 충돌이 잠잠해지면서 주인공은 차츰 북부지역 사람들 자체와 그들이 가진 순박함, 우스꽝스런 사투리, 심지어는 입 안에 불이 날 정도로 지독한 그 지방 특유의 치즈에까지 애착을 느끼게 된다.

<웰컴 투 슈티>는 그리 훌륭하게 촬영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효과 만점인 개그들이 작품에 적당한 리듬감을 주는 ‘정직한 코미디’다. 특히 이 영화는 기상천외한 <아멜리에>(2001)와 똑같은 도식으로 작동된다. 장 피에르 주네가 몽마르트르 동네를 그린 방식처럼 대니 분은 프랑스 북부지방을 따로 고립된 세계처럼 그려낸다. 관객은 세계화 돌풍의 여파가 아직 미치지 않은 밀폐된 공기방울 속으로 들어 가듯이 베르그시(市) 안으로 들어간다. 대니 분 감독은 베르그시를 마치 우체국이나 조그만 광장, 혹은 감자튀김 판매용 가건물이 전부인 양 단순한 지표물들로 축소해놓는다. 거기선 절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인터넷은 더더구나 없다. 소형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전부다. 거기엔 실업자란 없다. 빈민도 없다. 슬픔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외지인이란 남부에서 상경한 주인공 하나뿐. 이처럼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세계, 동시에 노스탤지아를 자아내는 작품 속의 세계가 대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은 <웰컴 투 슈티>가 프랑스판 <웰컴 투 동막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프랑스 어느 도시에선 <웰컴 투 슈티>를 본 관람객 수가 주민의 인구수를 이미 초월했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들이 꽤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같은 날에 말이다. 이처럼 <웰컴 투 슈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예술이 잃어버렸던 관객을 다시 영화관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웰컴 투 슈티>의 교육적 취향은 파리지엔 아가씨 <아멜리에>가 주는 최고급 유행성 미학에서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중·장년층 관객에게 그다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웰컴 투 슈티>는 또 한 가지 면에서 조심스럽지만 꽤 획기적인 작품이다. 흔히 프랑스식 코미디에선 선한 역할을 하는 배우와 악한 역할을 하는 배우가 서로 듀엣을 이루는 게 보통이다. 이와 같은 프랑스식 코미디는 키 큰 바보 부르빌(Bourvil)과 키 작은 심술보 루이 드 퓨네즈(Louis de Funes)의 전설적인 콤비가 등장하는 제라르 우리 감독의 <파리 대탈출>(1966)이 모델이다. 그러나 대니 분 감독은 선인과 악인이라는 대립 콤비가 아니라 약자 역할을 하는 두 배우를 주인공으로 하여 작품을 연출했다.

위기에 헐떡이던 아시아의 상처를 <쉬리>의 흥행이 치료해줬듯이 <웰컴 투 슈티>는 시장개방과 프랑스화(貨)의 가치 저하, 좋다고 하기엔 아무래도 터무니없이 비싼 유로화(貨), 또 점차 사라져가는 사회보장제도 등을 프랑스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다. 프랑스 관객은 남부와 북부의 화합이라는 상징을 통해 국가 전반적인 화해 분위기 조성을 주장하는 <웰컴 투 슈티>를 이 같은 위기의 시기에 접하게 된 셈이다. 요즘 같은 의혹의 시기, 나라 전체가 작은 온기를 찾아 화면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이런 시기에 영화관은 때론 모닥불이 되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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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