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과 이연걸의 호흡 지수 ★★★★ 유역비 매력 지수 ★★★★ 이연걸의 1인2역 실력 ★★
감독이 백인이라고 섭섭해할 이유는 없다. 타란티노의 <킬 빌> 시리즈가 그해 동서양을 통틀어 최고의 쿵후영화였듯 롭 민코프 감독의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역시 ‘최고’라 할 순 없어도 그에 버금가도록 귀여운 안간힘을 쓰는 영화다. 무엇보다 성룡과 이연걸을 동시에 캐스팅했다는 사실이 영화에 투입된 자본의 국적을 가리고 다국적 스탭 구성을 따져 묻는 수고스러운 작업 자체를 무력화한다. 코믹 쿵후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성룡과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이연걸은, 이소룡 사후 홍콩 무협영화를 떠받쳐온 이름들이다. 게다가 <킬 빌>이 과거 쇼브러더스 스튜디오의 로고를 오프닝에 삽입하며 존경을 표했듯, <포비든 킹덤…>도 의외로 성룡과 이연걸 그 이전의 쿵후영화 전통에 오마주를 바치는 장면들로 시작한다. 옛 무협영화 포스터들의 조합으로 경쾌하게 타이틀 시퀀스를 짠 것이다. 소림사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자 <킬 빌>에도 출연했던 유가휘가 기합을 내뱉고, 호금전 연출 <대취협>(1966) 포스터의 정패패가 CG로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할 때, 영화는 성룡과 이연걸의 만남이라는 사실만으로 허투루 급조된 영화가 아님을 웅변한다. 더불어 최근 베이징올림픽과 겹치며 홍콩차이나 무협블록버스터들의 한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중화권의 결집이라는 의미에서, 둘의 만남은 북방(이연걸)과 남방(성룡) 고수의 만남이기도 하다.
밤새 홍콩 무협영화를 보다 잠드는 미국 청년 제이슨(마이클 안가라노)은 차이나타운의 한 가게를 통해 황금색 봉이 이끄는 금지된 왕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절대고수 루얀(성룡)과 란(이연걸)을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은 그 봉을 지닌 제이슨이 500년 동안 봉인돼 있던 손오공을 깨울 수 있는 예언의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제이슨은 루얀과 란이 이끄는 대로 맹훈련에 돌입한다. 하지만 마스터를 봉인한 인물이자 어둠의 지배자인 제이드 장군(예성)과 또 다른 악의 전사 백발마녀(리빙빙)가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제이슨은 과거 제이드 장군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소녀 골든 스패로우(유역비)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한편 루얀도 화살을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고 제이슨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진다.
성룡과 이연걸의 ‘꿈의 대결’은 꽤 흥미진진하다. 물론 이제 대역 쓴 장면을 쉽게 찾아낼 정도로 그들의 몸은 노쇠했지만, 실제 그들이 과거 영화 속에서 각자 구사했던 권법을 시침 뚝 떼고 그대로 쓰면서 대결에 임할 때 묘한 향수가 일어난다. 사권, 학권, 무영각 등이 등장하는 과거 영화들 대부분의 무술감독이 원화평이었음을 떠올려보면 현재 세 사람의 만남은 거의 믿기 힘든 ‘우정의 무대’다. 중요한 것은 원작 <서유기>가 실전 무술이 아닌 ‘도술’이 주가 되는 <촉산>(1983), <동방불패>(1991)류의 판타지 무협영화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성룡은 그나마 유사했던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2005) 정도를 제외하고는 본격적으로 이런 판타지 사극무협영화에 출연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다. 더불어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법. 오랜 고전 <서유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성룡과 이연걸 대신 백인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리하게 성장영화로 만드는 전략을 짰다. 사실 왕년의 성룡과 이연걸도 장난기 많고 좌충우돌하다 수련을 거듭해 고수로 거듭나던 과거 소자(小子) 장르의 대표적인 영웅들이었다. 그러니까 <포비든 킹덤…>은 <트랜스포머>의 소년이 <그렘린>의 차이나타운 상점에 들어가 운명이 뒤바뀌고는, 왕년의 성룡과 이연걸처럼 ‘땔감 구하고 물 긷는’ 소화운수의 수련을 거친 뒤 고수로 거듭나는 영화다. 그래서 백인 제자의 다리를 찢고 기마자세를 종용하면서 티격태격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성룡의 ‘전체 관람가’ 신화는 그렇게 계속된다.
영화 속 오마주 대상들
타이틀 시퀀스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얼굴은 <취권2>(1994)에서 성룡과 호흡을 맞추었던 유가량이다. 과거 당가와 함께 장철 감독 영화의 단골 배우 겸 무술감독으로 활약했던 그는 이후 감독으로도 데뷔해 일련의 소림사 영화들로 승승장구했다. <남북소림>(1986)에는 막 ‘뜨기’ 시작하던 이연걸을 출연시키기도 했다(물론 정통 남방무술의 달인인 유가량은 당시 ‘초짜’ 이연걸로 인해 굉장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가량은 장철, 호금전을 포함한 홍콩영화계의 오랜 전통에서 성룡과 이연걸이 교집합을 이루는 선배로서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유가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성을 딴 무술팀을 만든 원조라 할 수 있으며, 장철 감독의 영화 안에서 원화평의 실질적 영화 스승이기도 하다. <난두하>(1979) 포스터의 유가휘는 바로 유가반의 핵심 인물로, 유가량의 소림사 장르 시초라 할 수 있는 <소림삼십육방>(1978)을 시작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 <킬 빌 vol.2>(2004) 시리즈에서 우마 서먼을 지도하는 백발의 스승이 바로 그다. 하몽화 감독 <혈적자>(1975) 포스터에서 그 혈적자라는 무기는 이른바 ‘플라잉 기요틴’으로 요요처럼 날려서 상대방의 목을 통째로 뽑아버리는 무기다. 바로 <킬 빌 vol.1>(2003)에서 유바리 고고가 들고 다니는 작은 철퇴가 그것의 변형이다. 제이슨이 보다 잠든 영화는 하몽화 감독의 <서유기>(1966)로, 특수효과 측면에서 쇼브러더스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룡이 가발을 쓰고 연기하는 사부는 과거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의 단골 사부로 출연했던 원소전을 패러디한 것이다. 술고래 같은 빨간 코가 인상적이었던 그는 <사형도수>(1978)의 백장천, <취권>(1978)의 소화자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으며 실제 원화평 무술감독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한편 유역비가 연기하는 ‘골든 스패로우’는 과거 제비 모양 비녀를 무기로 쓰며 정패패가 연기했던 <금연자>(1967)의 금연자(골든 스왈로우)에 대한 패러디이며, 리빙빙이 연기하는 백발마녀는 <백발마녀전>(1993)의 임청하를 포함, 무협작가 양우생의 원작으로부터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