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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풀∼풀∼ 납니다
2001-11-07

최정우 <라이방> 배우 겸 캐스팅디렉터

이 사람을 스탭난에 싣는 건 어쩜 매우 실례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99년 연극 <오늘>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고,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타임캡슐에 묻힌 화제의 공연 <불 좀 꺼주세요>의 주인공으로 장장 1년11개월 한 무대에 오른 그는 연극계에서는 얼굴 하나로 명함을 대신할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그가 도대체 무슨 미련이 남아서 신인의 자리로 돌아와 스크린에 섰을까. <인디안 썸머>로 신고식을 치른 그는 두 번째 작품 <라이방>에서 그는 배우와 스탭이라는 생뚱맞은 1인2역을 천연덕스럽게 해치웠다. 그가 금우(禁優) 구역인 스탭 코너에 초대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라이방>의 세 주인공 학락, 해곤, 준형은 장현수 감독의 전작에 얼굴을 내민 전력으로 기획 당시부터 일찌감치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문제는 이들을 제외한 조연들이었다. 애초에 스타를 포기한 이상, 주인공 이상의 맛깔나는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 지원이 필요했던 상황. 살아 움직이는 일상을 화면에 옮기려는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배우들의 연기는 연극의 분위기를 지우지 못해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캐스팅 미스가 반복되자 최정우가 자원을 하고 나섰다. 그는 뮤지컬팀으로 활약중인 세명의 여배우를 데려다 ‘울랄라 시스터즈’를 빼닮은 꽃뱀들로 바꾸어놓았고, 코에 기름칠을 한 진짜 순진남을 연기하겠다고 찾아온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유독 여행을 좋아한다는 진지한 눈빛의 이승진을 발굴해냈다. 뿐만 아니라 ‘다혜’이자 ‘봉녀’의 역할에 송옥숙을 적극 추천한 것도 그였다. 당시 미국에 있던 그녀를 불러들이자는 제안에 감독은 처음엔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고, 그냥 국내의 다른 배우를 쓰자고 했다. 지금은? “아이고, 형 고마워” 이런다.

언젠가 인터뷰 자리에서 “40줄 들어선 연극배우가 어쩔 수 없이 방송이나 영화에 다리를 걸치는 게 운명이라지만, 나는 소극장에 매달리고 싶다”고 말한 건 그의 진심이었다. 이제 그는 “20년이면 충분하지 않았느냐”고 답한다. 영화를 하고 싶어한 건 연극을 만나기 훨씬 전의 일이었고, 오래 전 유기해버린 꿈에 다시 매달리고 싶어진 건 지금에 와서다. 연극을 할 때도 늘 소극장주의, 창작극 노선만 고집해온 그는 영화에서도 사람냄새 풀풀 나는 그런 영화를 만나고, 또 만들고 싶단다. 이제 얼마 뒤면 그의 첫 번째 영화가 만들어진다. 시나리오는 70% 정도 만들어졌으며, 드림팀도 꾸며졌다.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가, 정성이, 우리가 영화를 만든다는 점”이라고 내내 강조하는 그의 손에서 만들어질 영화, 진짜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프로필

1957년생

77년 충무로 영화인회의 등록, 서너편의 작품에 출연

이후 연극계에 20년간 투신

<불 좀 꺼주세요> <오늘> <용띠위에 개띠> <이자의 세월> <그것은 목탁구멍 속에 작은 어둠이었다> <물 속에서 숨쉬는 자 하나도 없다> 외 다수 출연

99년 <오늘>로 동아연극상 연기상 수상

<인디안 썸머>(2001) 출연

<라이방>(2001) 출연 및 캐스팅디렉터로 활약

단편 <메모리즈>(김지운 감독 2001년)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