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힘. 영화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신비로운 힘, 잘만 쓰면,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모으는 힘. 나는 스타의 힘을 믿는다. 그렇지만 할리우드에서 스타의 힘과 한국에서 스타의 힘이란 참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할리우드영화에서 스타의 힘을 평가하자면 단순한 산수 계산을 하면 된다. 한 영화에 맷 데이먼을 캐스팅하면 40점, 거기다가 안젤리나 졸리가 같이 출연한다면 40점. 그러면 이 40 더하기 40인 80점이 스타의 힘이 된다. 물론 이건 지나치게 일반화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할리우드에서의 기본 논리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숫자를 단순히 더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많은 수익을 낸 한국영화가 최고의 스타들을 캐스팅한 영화인 경우는 드물다. 한 영화에서 인기있던 배우가 다른 영화에서는 전혀 그 빛을 발하지 못한다. 아마도 한국에서의 스타 캐스팅을 설명하기에는 산수보다는 연금술의 비유를 드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두명의 배우와 한 시나리오를 섞어서 그 다음에는 이 배합이 갈색 젤리로 굳을지 아니면 거품을 내며 한 줄기 연기로 사라져버릴지를 지켜보아야 하는.
<추격자> 같은 영화의 성공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같은 영화의 흥행 실패를 보면 한국에서 스타의 힘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이지 스타가 아니라고. 그러나 내가 보기에 스타의 힘은 존재하며 상업적인 한국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지 한국 관객이 원하는 것은 스타들을 영화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스타의 힘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에서 자라난 내게, “영화 스타”란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는 한줄기 섬광이면서 수천 광년은 떨어진 먼 곳의 그 어떤 존재였다. 브래드 피트 같은 스타는 믿을 수 없이 멀리 떨어진 존재이며 나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그런 존재였다. 그는 TV나 광고에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그가 어쩌다 영화에 출연하면, 개기일식처럼 정말 어쩌다 일어나는 흔치 않은 일을 접하는 것처럼 그가 나온 영화를 보곤 했다.
대다수 한국인들 역시 스타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에게 스타들은 무척이나 익숙하고 절친한 존재다. 아마도 한국 스타들은 TV 토크쇼라든지, 소주 광고, 아니면 버스의 벽면 광고 등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존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상당히 작은 나라이고 많은 사람들이 서울 주변이나 서울에 산다는 사실이 인기있는 배우들에 대한 친밀감을 더해주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 관객은 배우들이 색다르게 캐스팅되는 것을 선호한다. 한 배우가 자기 개성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주는 그런 역할을 하거나(<너는 내 운명>에서처럼), 배우들의 흥미로운 조합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타짜>처럼).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스타들은 이미 데뷔 초부터 할리우드 수준의 스타 파워를 갖는다. <왕의 남자>에서의 이준기나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처럼. 그들의 새로운 이미지와 개성이 관심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길게 보면 중요한 것은 배우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하는 역할이다. 송강호나 전도연처럼 장기간 스타의 지위를 누려온 스타들은 연기력에 대한 명성을 쌓은 덕에 그런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한국 관객을 특정한 성격 타입으로 분류하자면 그들은 변덕스러운 연인(좋은 의미에서)과 같다. 로맨틱한 관계가 처음에는 확 끓어오르지만 곧 차갑게 식고 갈라서버린다. 아마도 그들은 데이트를 하는 와중에도 이미 방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 관객은 심은하와 헤어진 뒤 그 누구와도 그 같은 사랑에 다시 빠진 적이 없다. 어떤 배우도 그들이 연기하는 역할이 아니라 그가 누구인가 때문에 심은하만큼 널리 흠모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