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댄스의 불씨를 댕기다.’(<월스트리트 저널>) ‘스릴 넘치고, 섬세한 묘사와 이목을 끄는 개성으로 가득하다.’(<뉴욕타임스>)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그들의 움직임은 스릴 넘친다.’(<뉴욕데일리뉴스>) 언뜻 보면 뮤지컬 공연 리뷰에 가깝지만, 실은 비보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플래닛 비보이>의 리뷰에서 등장한 말이다. 지난 3월21일 뉴욕과 LA에서 단관개봉해 연장상영에 돌입하고, 25개 도시 개봉으로 확대상영이 결정된 <플래닛 비보이>는 한국계 미국인 벤슨 리 감독의 작품이다.
1998년 데뷔작 <미스 먼데이>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던 한국계 미국인 벤슨 리(38) 감독은 이듬해 ‘배틀 오브 이어’(국제 비보이 경연대회)의 비디오를 처음 접한 뒤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한국 비보이 ‘갬블러’가 우승했다는 소식을 접한 벤슨 리 감독은 비보이 자료조사차 한국을 방문해 한국 비보이들의 테크닉과 열정을 보고 매우 놀랐다. 2005년부터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인 셈.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2005년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 기간에 열리는 TAA(Tribeca All Access, 부산영화제의 PPP 같은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수많은 제작자와 투자자들을 만나봤지만 <화씨 9/11> <슈퍼 사이즈 미>와 같은 다큐멘터리가 붐이었던 상황에도 투자를 받는 것은 힘들었다. 이후 개인적인 투자자들을 수없이 만나 제작비가 조금이라고 생기면,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매일 통장잔고와 싸우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제작비의 어려움은 물론, 촬영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복궁에서 촬영을 허락받았으나 막상 ‘궁 안’에서 촬영을 시도하자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고, 불교 사찰에 방문해 비보이의 퍼포먼스를 불상 앞에서 촬영하다가 스님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어려운 영화제작 현실과 달리, 벤슨 리 감독이 담아낸 ‘배틀 오브 이어’에는 매우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비보이 ‘한·일전’이 1, 2위전에 펼쳐지고, 예상 밖의 팀이었던 ‘라스트 포 원’(한국)이 강력한 우승 후보인 ‘이치게키’(일본)를 누르고 2005년 최고의 팀이 되었던 것이다.
비보이에 대한 관심폭발과 유튜브를 활용한 마케팅
선댄스영화제에 선정되지 않았던 <플래닛 비보이>는 2007년 트라이베카영화제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영화상영을 축하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뉴욕 공연을 해주었던 비보이들의 감동적인 공연과 함께 야외상영으로 이뤄졌다. 4천명의 야외상영 수용 인원을 훨씬 넘어선 6천명의 관객이 몰려들 정도로 관객의 관심은 뜨거웠다. 트라이베카영화제 기간 중에 <스파이더맨 3>에 이어 두 번째로 언론 노출이 많이 된 영화일 정도. 감독은 선댄스영화제나 기타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했다.
<플래닛 비보이>가 뉴욕에서 환영받고 있는 것은 최근 비보이 문화에 관한 관심에 기인한다. 비보이는 뉴욕 브롱크스에서 70년대 탄생해, 80년대 미디어에 의해 ‘브레이크 댄스’로 알려져 붐을 일으키고, 유럽으로 퍼져 90년대 초반 춤솜씨를 겨루는 ‘배틀’이 생겨났다. 지금은 국가를 대표하는 비보이들이 겨루는 ‘글로벌 배틀’이 되었으며, 각 나라에서 중요한 문화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미국 미디어의 관심은 ‘힙합’, ‘DJ’문화로 이동해, 비보이는 관심 밖에 있었다. 이 때문에 뉴욕 비보이들은 <플래닛 비보이>를 자신들의 이야기라며 반기고 있으며, 미디어들은 이 영화를 계기로 비보이들의 댄스에 현혹되고 있는 중이다. 뉴욕과 LA의 단관에서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한 <플래닛 비보이>는 유튜브 마케팅의 성공작으로도 꼽힌다. 4월1일 기준으로 예고편 118만3957회, 북한 군인과 남한 군인이 휴전선에서 벌이는 배틀 동영상 51만5202회 클릭 수를 기록했다.
“진실을 알리는 것이 즐겁다”
벤슨 리 감독 인터뷰
-<플래닛 비보이>의 제작을 시작한 지 꼭 3년 만에 뉴욕에서 첫 개봉을 하게 됐다. =실은 1999년에 처음 ‘배틀 오브 이어’를 보고 기획을 시작한 지 올해가 10년이 되는 해다. 10년을 기념하는 선물 같다. 종종 감독들이 인터뷰를 통해 10년 동안 기획한 영화라는 말을 하면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998년에 선댄스에서 수상한 첫 장편 <미스 먼데이>와 <플래닛 비보이>의 영화적인 거리감은 꽤 큰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미스 먼데이>에는 소설의 소재를 찾기 위해 한 여성을 관찰하면서 보이는 것보다 더한 것들을 알게 된다는 컨셉이 있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비보이들이 사실은 ‘매우 멋진 춤’을 추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플래닛 비보이>의 컨셉과 얼마간 닮아 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본인의 영화학교였다고 들었다. =난 영화학교를 가본 적이 없다. 영화 만드는 방법을 알기 위해 <미스 먼데이>를 만들었다. 이번 <플래닛 비보이> 역시 제작비를 조달하는 방법, 비즈니스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법,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 방법 등을 배웠다. 어느 것 하나 후회되는 것이 없었고, 매 순간이 도전이고 배우는 과정이었다.
-비보이들이 겪는 가족간의 갈등, 사회의 무시에 가까운 무관심 그리고 월드 챔피언십을 통한 화해까지 극적으로 연출된 다큐멘터리다. 미리 기획된 것이었나. =그렇다. 비보이팀마다 테마가 있다. 일본팀(이치게키)의 경우 두 번째 도전이다. 첫 번째는 이기려는데 너무 포커스를 맞추는 바람에 이기지 못했다. 두 번째 도전은 이기는 데 있다기보다 좀더 즐기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국팀의 경우(라스트 포 원)은 가족이 테마였다. 우승을 기대하지 않은 팀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좀더 교감하고, 인정받기 위해 배틀하는 비보이에 초점을 맞췄다. 때문에 1, 2위전은 마치 ‘아버지들의 배틀’처럼 연출했다.
-비보이 30년 역사를 한국이 5년 만에 이룰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회로부터의 중압감이 아티스트들로 하여금 자유를 좀더 갈구하게 만드는 좋은 예 중 하나다. 한국 비보이들은 무척 외롭다. 그들은 좋은 학교를 가지도 않았고, 가족으로부터 지원을 받지도 못하고, 돈이 많은 부모에게 얻을 수 있는 ‘럭키 옵션’도 없다. 게다가 21살이 되면 군대에 가야 한다. 정말 행복한(?) 인생이다. (웃음) 그들은 춤으로 멋지게 나를 표현할 수 있다. 주변 사람이나 자기가 속한 사회로부터 춤을 보고 멋지다라는 말을 듣게 되고, 존경을 받게 된다. 비보이들은 다른 그룹보다 그런 존경심을 좀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당신에게 가장 존경심을 받고 싶은 상대가 누구인가?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내 영화를 보고, 당신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하는 관객, 그들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 영화가 끝나고 당신 영화 너무 좋다라는 말을 듣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나에게 뭔가 문화적인 교훈을 주는 영화, 좀더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영화다. <화씨 9/11> <슈퍼사이즈미> 같은 영화는 호감은 가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평범한 사람이 영화를 통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영화들. 그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큰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댄스영화라기보다 꿈과 열정에 대한 영화 같다. 당신에게 열정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진실이다. 일본 지하철에서 연습하는 비보이들(이치게키)을 보고 누군가는 바닥청소하는 정도로 여기거나, 시간을 쓸데없는 곳에 허비하고 있다고 쉽게 폄하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일본을 대표하여 독일에서 열리는 배틀 오브 이어에서 수만명의 관객 앞에서 멋진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난 그런 진실을 알리는 것이 즐겁다.
-다큐멘터리 제작이 힘들었기 때문에 장편을 하려고 하는 건가. 장편 시나리오는 어떤 내용인가? =내 첫사랑이 장편영화였다. 좋은 스토리가 있어서 장편영화를 준비하려는 것이다.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글로벌화된 주제로 배틀하는 이야기를 만들 예정이다.
-<플래닛 비보이>에 출연했던 비보이들이 장편에도 나오나?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을 거다. 역할에 맞는 비보이들을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할 예정이다.
-<플래닛 비보이>를 한국 관객은 언제쯤 볼 수 있나? =여름이나 가을쯤이지 않을까 쉽다. 몇몇 한국 배급사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