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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작영화의 욕망] <삼국지: 용의 부활>의 이인항 감독 인터뷰
주성철 사진 이혜정 2008-04-08

“조자룡을 생각하며 10년 동안 고민했다”

장철 감독의 <독비도>에 대한 리메이크인 <독벽신도>(1994)로 데뷔한 이인항 감독은 멜로와 액션영화를 오가며 여기까지 왔다. 지난 10여년 넘게 활동하면서 불과 10편 정도 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홍콩영화계의 전성기에 데뷔한 감독치고는 꽤 과작이다. 이연걸 주연의 <흑협>(1996)과 유덕화 주연의 <파이터 블루>(2000)가 대표작이며 장국영 주연의 멜로영화 <성월동화>(1999)도 기억해둘 만하다. 한국 배우들과의 인연도 꽤 깊은 편이어서 국내에서 결국 개봉하지는 못했지만 김현주 주연의 <스타 러너>(2003)를 연출했고, <맹룡>(2005)에는 악역으로 허준호를 캐스팅하기도 했다. <삼국지> 이야기를 조자룡에 관한 일대기로 완성한 <삼국지: 용의 부활>은 그가 10여년 넘게 준비한 아이템이다.

-데뷔작이 무협 사극이었던 반면 그 뒤로는 전혀 사극을 연출하지 않다가 <삼국지: 용의 부활>을 만들었다. 제작환경이나 여러 면에서 그때와 어떻게 달라졌나. =사실 데뷔작도 정통 사극이라기보다 퓨전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삼국지: 용의 부활>이 나의 첫 번째 정통 사극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시대 역시 무척 오래전이기 때문에 철저히 고증을 거쳤다. 물론 그 고증을 치밀하게 재현하기 위해서였다기보다 어떤 변형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고증 연구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의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제작에 나서줬기 때문에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정태원 대표 역시 나처럼 <삼국지>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에 쉽게 공감대가 이뤄졌다.

-유덕화와는 <파이터 블루>에서 이어 두 번째 작업이면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도 그의 죽음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그와 멜로영화를 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테지만(웃음) 내가 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 <파이터 블루>를 하면서 유덕화와 얘기를 나누길, 복서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링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완벽한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영화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마음은 잘 맞았다. 조자룡도 장군이라 전장에서 죽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봤다. 그는 죽기 전에 왜 싸우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 해탈을 한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그 죽음이 지니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혹시 장철 감독을 좋아하는가? 유덕화가 다른 장군들과 달리 흰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명백하게 그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 같다. =맞다. 장철 감독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에 관한 에피소드는 정말 많다. 데뷔하면서 내가 그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다고 소문이 나니까 장철 감독이 테이프를 카피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는 홍콩영화계의 전설이었기에 정말 떨렸고 결국 그의 집에 가서 내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는 느긋한 자세로 한참 영화를 보더니 내가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지 알겠다며, 영화를 딱 반만 보고는 자신이 고령이라 영화 작업이 힘들긴 하지만 구상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며 다음 영화를 같이 하자고 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이뤄지지 못했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 이미 말년에는 청력이 거의 없어져서 전화 통화도 못했다. 그래서 늘 대화는 팩스로 직접 써서 나눴는데, 2002년에 돌아가시고 보니 주고받은 팩스 용지가 엄청 두꺼웠다. 그리고 장철 감독이 가장 좋아한 색깔이 화이트와 레드였다. 특히 흰색은 중국에서는 극과 극을 상징한다. 상을 당했을 때, 그리고 아주 신성한 순간에 입는 것이 바로 흰옷이다. 어쨌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 절대 흰옷을 입지 않는다. 그런데 장철 감독은 주인공들에게 흰옷을 즐겨 입혔고 거기에 붉은 피를 뿌렸다. 당시 홍콩영화계에서 그것은 다소 충격적인 이미지였다. 물론 그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다.

-당신도 장철의 오랜 팬이고, 오우삼은 실제 장철의 조감독 출신인데 두 사람 모두 같은 해에 <삼국지>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장철은 <삼국지>의 라이벌과도 같은 <수호지>는 여러 번 영화화했으면서도 정작 <삼국지>에는 손댄 적 없다는 게 신기하다. =장철 감독이 딱 한번 <삼국지> 이야기를 영화화한 적 있다. 내가 조자룡에만 집중한 것처럼 그도 관우를 중심인물로 <무성관공>이라는 영화를 만든 적 있다. 그런데 특별히 주목받은 영화는 아니었고 <수호지>에 대한 애정은 확실히 컸다. 내가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추측하기로는 제작환경 탓도 있지 않았나 한다. <삼국지>는 엄청난 수의 병사들이 등장하는 전투신이 필수적인 반면, 속칭 산적들의 이야기인 <수호지>는 당시로서 <삼국지>보다는 영화화가 쉬웠을 것이다. 아마도 올해 들어 <삼국지>를 원작으로 한 두편의 새로운 영화가 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그런 기술력의 증가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의외로 <삼국지: 용의 부활>은 특수효과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실제적인 싸움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제일 많이 의도한 것은 관객이 봤을 때의 실감이었다. 최근 여러 다른 무협 대작들을 보면서도 늘 아쉬웠던 것은 지나치게 특수효과에 집중하는 태도였다. 특히 이번 영화는 여러 인물이 아니라 조자룡 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에 그러한 현실감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날아다니는 게 보기에는 좋겠지만 <삼국지> 이야기가 실제 시대적 배경이 명확한 역사적 이야기기도 하니까 특수효과 사용은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홍금보의 무술팀 홍가반이 그런 리얼한 장면 연출에 있어 탁월하다.

-최근 무협 블록버스터들의 활발한 제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 역시 딱히 홍콩과 중국을 구분하지 않는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규제들이 있긴 하지만, 중국이 개방하면서 영화작업과 합작이 쉬워진 건 분명하다. 왜냐하면 배우가 아닌 감독 입장에서는 크랭크인하기 전부터 스튜디오 점검이라든가, 촬영지 헌팅 등으로 계속 중국쪽과 얘기하고 수시로 왕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개방의 속도가 급물살을 타던 시점과 맞물려 최근 이런 무협 블록버스터들이 활발하게 제작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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