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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따뜻한 로맨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미국 시골 마을 히키코모리의 기묘하고 따뜻한 로맨스

니트 스웨터를 즐겨 입는 이 미국 시골 마을 사람들은 참으로 선량하다. 이들은 영어를 못해 소통이 불가능하고 게다가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한 이방 선교사 여인을 따뜻하게 환대하고 자신들의 공동체 일원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녀, 비앙카는 마을 사람들이 사랑하는 수줍음 많은 라스(라이언 고슬링)가 최초로 만나 사귀는 여자다. 이 기묘한 관계에 놀라 처음에는 정신질환을 의심하며 걱정하던 가족과 의사와 마을 사람들은, 인내와 애정으로 관계의 진행을 바라보기로 하고 그가 초대한 여자친구를 가족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비앙카는 교회에 가고 파티에 나가며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그와 더불어 라스의 세계도 점차 넓어져간다.

소심한 외톨이 라스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형의 집 옆의 창고에서 혼자 생활하는 미국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다. 임신한 형수가 늘 식사에 초대해 함께하기를 권하지만 좀처럼 그는 집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할 때, 창문의 격자 틀 안에 갇힌 그의 모습은 좀처럼 내면의 상자 밖으로 나오지 않는 완강한 그의 닫힌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소심한 외톨이의 로맨스이자 힘겨운 껍질 깨기의 신화적 원형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기묘한 까닭은, 그가 데려온 전대미문의 여자친구가 사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비앙카는 인터넷으로 주문된 섹스토이 일종인 리얼 사이즈 러브 돌(Love Doll)이다. 소심한 라스는 모든 기능이 완비된 비앙카를 두고도 성실하게 각방 생활을 하며 그녀를 돌본다. 산책을 시키고 대화를 하고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 그녀를 소개한다.

재미있는 점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가장 은밀하게 홀로 즐기는 특정 목적용 인형을, 폐쇄공간에서 어렵사리 밖으로 나선 라스가 온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본래의 기능에서 일탈되면서 그 인형에게는 점점 인격이 부여된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인형인 비앙카는 참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특이한 역할을 수행한다. 비앙카는 라스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라스와 타인들이 그녀를 매개로 관계를 맺는 소통의 창이 된다. 또한 그녀는 라스가 자신의 갇힌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통과제의를 적절하게 수행해주는 영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 라스는 자신을 낳다 죽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임신 중인 형수에 대한 애착과 곧 있을 출산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지만 좀처럼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타인의 손길에 물리적인 고통을 느끼는 심리적 질환을 지니고 있었다. 라스가 가족과, 친구와, 다른 동료이자 이성인 여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은 곧바로 비앙카와의 관계에 반영된다. 라스가 자신의 폐쇄된 세계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이 수행하지 못했던 애도(어머니와의 관계에서)의 상징적인 종료와 회복이 필요하고 여기서 비앙카는 제 몫을 수행하게 된다.

소심한 라스 역의 라이언 고슬링은 <빌리버>(2001)에서는 광기 어린 스킨헤드족 네오나치로 <노트북>(2004)에서는 감성적인 로맨티스트로 변신하며 내실있는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주목할 만한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서, 차기작인 <천국보다 무거운>에서 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으로 변신한다니 지켜볼 일이다. TV시리즈 <식스 핏 언더>의 각본가이던 낸시 올리베르는 과하지 않은 균형잡힌 스토리로 이번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주노>의 똑똑한 사례처럼 최근 미국영화의 몇몇 명민한 각본들은 미국 소규모 공동체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되, 현실에 철저히 발을 딛고 있다. 상처와 파탄과 고독을 피해가지 않지만, 여전히 지속되는 삶의 명랑성을 긍정하는 이러한 작은 영화들이 할리우드식 인공적 휴머니즘을 피해가면서 잔물결처럼 소소하게 오래 남는 감동을 주고 있다. 자극적 에로스도, 격정적 파토스도 없는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인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인공의 구조물들에 질식할 정도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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