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화 불법복제 문제에 내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해적판’ 얘기를 꺼내면 모두들 한숨을 쉬면서, “맞아요, 불법 다운로드가 한국 DVD시장을 다 죽여놨죠”라고들 한다. 나 역시 DVD는 죽었다거나 다운로드가 가장 큰 문제라거나 하는 문제들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그저 도대체 왜 서울의 지하철역이나 도심에서 불법복제판 DVD를 내놓고 파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데 대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지가 이상할 뿐이다.
이 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내가 3년 전 대학로에서 목격한 슬픈 아이러니는, 불법복제 DVD를 정품 DVD 가격의 10~20%를 받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정품 DVD를 파는 사람이 거리 좌판을 펼쳐야만 했을 때다. 이제 정품 DVD를 판매하는 사람은 망하고, 하루 평균 대학로에는 200m 정도의 거리에 최소 다섯명의 불법복제 DVD 판매상들이 진을 치고 있다. 매번 그들을 지나칠 때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케이스를 들춰보며 추천을 구하곤 한다.
이들의 장사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은 그들의 장부를 들춰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잘 알려지지 않은 아트하우스영화인 <퍼>(Fur: 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도 판매한다. 그 영화가 장사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굳이 그 DVD를 만들고, 그 귀한 전시 자리를 내줄 리가 없다. 그들이 이 영화로 돈을 벌고 있다면, 그들은 실제 영화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사업 불법이지? 사람들이 말하길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들을 법으로 규제하기가 힘들다고 하고, 그 얘기를 믿는다 하더라도, 경찰관 한명이 길거리의 해적판 판매상에게 가서 “이거 불법이니 팔면 안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가?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경찰에게는 어째서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이들을 종로에서 찾기는 요새 길가에서 쓰레기통 찾기보다 백배는 더 쉬운데 말이다.
내가 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그렇다, 이 문제에 대해 항상 예민하다) 해적판 판매상들이 길거리에 진을 치고 있는 광경은 서울을 무슨 제3세계 도시처럼 보이게 하며,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한다. 나는 가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해적판 DVD 타이틀들을 모두 부숴버리는 공상을 하곤 한다(망치를 들고,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대들면, “가서 경찰 불러오라고”라고 맞설 생각도 해본다. 경찰이 그들이 아니라 나를 대신 체포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2006년, 할리우드가 DVD 판매로 벌어들인(대여를 제외하고) 수익은 극장 수익의 177%에 이른다. 일본은 110%, 한국은 불과 7%였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한쪽 엔진만으로 날고 있는 비행기처럼 위태위태하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최신식 휴대폰을 공장에서 훔쳐서 길에서 2만원씩 받고 팔고, 그래서 합법 판매상들이 도산하는 사례가 속출한다면, 한국 정부는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도 좀 어떻게 해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라며 수수방관하고 있을까? 한국 정부는 영화산업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일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이 문제는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켜왔다. 스크린쿼터 문제에 너무 정신이 팔려서 이런 문제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법을 집행할 책임은 정부에 있지 영화산업쪽에 있지 않다. 만약 한국 정부가 영화 기업들이 도둑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사업 환경을 만드는 데 무관심하거나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면, 적어도 서울의 거리가 다시 깨끗해질 때까지 모든 티켓 판매에서 그들이 가져가는 3%의 세금을 거두지 말 일이다. 이런 조치가 한국 DVD 사업의 죽음을 보상해줄 수는 없겠지만, 한국영화 제작사들이 도산해나가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