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단은 스포일러입니다.)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에서 라자레스쿠씨는 죽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영화가 끝난 이후의 문제다. 영화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은 뇌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눕혀지고 머리가 빡빡 깎인 상태다. 힘없이 그가 고개를 돌려 얼핏 카메라쪽으로 시선을 두는가 싶을 때 영화는 막을 내린다. 라자레스쿠씨는 영화에서 죽지 않았는데 왜 모두가 그의 죽음을 말하는가. 그러나 영화의 저편 혹은 그 이후의 일을 믿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힘이다.
분명 라자레스쿠씨(이온 피스큐테누)는 아침부터 속이 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저녁이 되자 신물이 넘어와 얼마 먹지도 못한 음식들을 죄다 토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웃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지나친 애주가이며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며 되는 대로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자립심도 없어 보이고 그다지 인간미 넘치는 호남형도 아니다. 성질도 까탈스럽다. 그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 응급차가 오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시내에서 이미 일어난 큰 교통사고 때문에 병원은 만원이고 라자레스쿠씨는 제대로 된 진찰 한번 받지 못한다. 개인병원에서는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고, 여기서는 다른 전문병원으로 가라고 하고, 거기서는 또 다른 전문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그렇게 4군데를 돈다. 그러는 사이 그가 듣는 말은 “이름이 뭡니까”, “술 먹었군요”라는 반복되는 질문과 질책들이다. 어쩌다 운 나쁘게 라자레스쿠씨를 맡게 된 한 응급구조요원(루미니타 게오르기우)만이 그래도 마지막까지 그를 버려두지 않으려고 애쓴다. 10시에서 3시경까지 라자레스쿠씨는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맬 뿐이다. 이 영화는 그 지친 마지막 시간을 그려낸다.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은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에 1년 앞서 혹은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 2년 앞서 루마니아영화의 새 바람을 이미 예고했던 작품이다. 2005년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각종 영화잡지의 설문에서 수위에 오르기도 했다. 시종일관 긴박감을 자아내는(그러나 약간의 허세도 함께 장착한) 카메라의 주인이 촬영감독 올렉 무투라는 점(<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촬영감독)은 분명 ‘신루마니아영화’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리얼리즘에 대한 소신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본 순서대로 말하자면,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은 말이 많고 시간을 건너뛰지 않으며 일상 속에서 걸어나온 하나의 사건과 인물에 밀착한다.
이 영화에 대한 그간의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깊은 슬픔과 어두운 유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정확히 계산되고 인상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어 마치 예전의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한다. 푸이유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이 작품에서 이미 거장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시카고 리더> 조너선 로젠봄)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한편, 감독이 말하는 연출의 의도는 이와 같다. “(루마니아의) 의료제도의 문제는 존재한다. 하지만 나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한 인간, 한 영혼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끌면서 죽어간다는 것 말이다. 히치콕은 단 한 인물만 등장하는 영화를 구상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도 바로 그런 것을 하고 싶었다. 두 시간 반에 걸쳐 침대 위에서 한 인간이 죽어가는 것 말이다.”
거의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도 말 한마디에 “당신이 그 용어의 뜻을 알고 쓰는 것이냐”고 되묻는 의사들의 방만하면서도 권위적인 태도가 묘사되지만,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루마니아 의료제도의 난점을 짚는 사회고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데 큰 장점이 있다. 이 영화는 운명에 관한 것이고 한 인간의 마지막 시간에 관한 것이며 그 시간에 라자레스쿠씨의 주변에 우연히 함께 입회해 있던 사람들의 무관심과 피로함 그로 인해 이어진 냉혹한 인간 소멸의 결과에 대한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이 영화의 148분이라는 짧지 않은 상영시간은 그러므로 설득력있는 물리적 시간이며, 특히 그 안에서 움직이던 단 한명의 단역조차 생기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은 감독 크리스티 푸이유의 값진 연출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