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루마니아 혁명 2년 전”이라는 작은 글씨체의 자막이 지나고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첫 장면이 시작되면, 젊은 여자가 화면 안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카메라 바깥에서 다른 여자가 그녀에게 “고마워”라고 말한다. 무엇이 고맙다는 말인가. 화면 속의 여자는 화면 밖의 여자가 고마워할 무언가를 해주기로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 약속한 모양이다. 대학 기숙사의 룸메이트 가비타(로라 바질리우)가 오틸리아(안나마리아 마링카)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둘은 많이 분주하다. 담배, 비누, 돈 등을 챙겨야 한다고 정신없이 서두르면서도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노트를 가져가야 할지를 걱정한다. 둘은 도대체 어딜 가려는 걸까. 오틸리아는 남자친구에게 급히 돈까지 빌리고, 아마 지상에서 가장 불친절해 보이는 호텔 두 군데를 들러 그중 한곳에 겨우 방을 마련한다. 그들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 건가.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이렇게 아무 드러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혹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자 하는 관객을 계속 기다리게 한다. 30여분이 지나 불법 낙태 시술자가 들어와 “낙태해본 적 없느냐”는 말을 하기 전까지 이 영화는 마치 추리물처럼 정황의 파악을 지연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런 의문 구조의 영화가 탄탄한 기본기를 갖췄을 때 거기에는 힘이 붙게 되며, 그 원인이 밝혀질 때 수긍할 만하거나 충격적이라면 환호받기 제격이다. 특히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 영화제라면 환호는 더 즉각적이다. 그 때문인지 루마니아 출신 크리스티안 문주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신인감독의 2번째 장편(첫 번째 장편은 <내게 너무 멋진 서쪽 나라>(2002)이며 이 영화로 부천국제영화제에 온 적이 있다)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쟁쟁한 감독들을 물리치며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오틸리아 역의 안나마리아 마링카는 <밀양>의 전도연만큼이나 모든 혼란을 짊어진 역을 연기한다. 낙태는 오틸리아가 아니라 가비타가 하는 것이지만 이 영화의 심정은 오틸리아에게 가 있다. 촬영 일주일 전까지 배우를 결정하지 못하던 감독이 영국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영국에서 활동 중인 안나마리아 마링카를 융숭한 대접으로 모셔온 것은 잘한 선택이다. 그 밖에 감독이 광고를 만들던 시절에 알게 되었다는 가비타 역의 로라 바질리우는 숙맥 같고 우유부단한 역을 적절히 해내고 있다. 이 영화로 2007년 LA비평가협회에서 남자 조연상을 받은 낙태 시술자 역의 블라드 이바노브 역시 입만 열면 때려주고 싶을 만큼 냉혈한의 면모를 선보인다. 전반적으로 실내에서의 카메라는 불안하게 떨며 멀리 있거나, 오틸리아가 밖으로 나가면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으려고 한다. 오틸리아가 다니는 모든 장소가 세트가 아니라 로케이션 장소임은 말할 필요가 없고 저예산으로 밀도있게 촬영됐음을 알리는 표식도 여러 가지다. 감독은 어떻게든 불편한 상황 안으로 인물들을 밀어넣고, 1987년 그날 밤 낙태를 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돕는 여자의 하룻밤에 관해 묘사하려고 애쓰고 있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1987년 루마니아의 혁명 전 분위기(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루마니아에서 낙태는 불법이었다고 한다. 감독은 그 시대의 특징 중 하나를 고른 셈이다) 속에서 일어난 낙태라는 개인들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세미나 장이 되는 길을 버리고 가난한 인물들의 숨소리와 진땀과 유기되는 생명체를 포착하려 한 것은 뛰어난 선택이며 진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묘사력에서는 얼마간 성공하지만 감독이 또 다르게 의도했을 당대 루마니아의 분위기를 육화하는 점에서는 미흡하다. 가난한 여인들의 낙태의 밤에 관한 영화로 완성된 면모가 더 강한데, 정작 흠이라면 영화의 구조 안으로 끌어들인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적당히 괴로운 지점에서 멈추었다는 것이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이 영화가 유능한 신인감독의 성실한 수작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신은 동시에 이 작품이 본래의 역량 이상으로 너무 큰 격찬의 호위호식을 누린 사례라는 걸 반드시 알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