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드 애파토우는 성공을 거둔 지금도 영화기술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고백하거나, 자신과 친구들을 싸잡아 삼류라고 놀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는 자기학대에 가까운 농담을 즐긴다. <사고친 후에>의 DVD에 수록된 부록- ‘감독을 감독하기’(8분)를 보자. 애파토우와 계속 충돌하던 유니버설사는 감시 목적으로 <카포티>의 감독 베넷 밀러를 보낸다. “미적 요소와 작품에 대한 통제를 배워야 한다”고 충고하는 밀러에게 몸싸움을 건 애파토우는 도리어 얻어터진 뒤 잔디밭에 내팽개쳐진다. 지금껏 DVD에 실린 것 중 가장 어처구니없는 이 부록에서 애파토우는 자기를 인정하지 않았던 메이저 영화사와 방송사를 향해 일침을 가한다. 코미디 작가로 출발한 그가 의욕적으로 제작한 <프릭스 앤드 긱스>와 <언디클레어드>가 방송사의 이해 부족으로 단명하고 말았던 것(두 작품은 이후 컬트의 지위에 오른다). 그렇게 위기를 맞았던 그의 제작사는 이후 보란 듯이 복수전을 치른다. <앵커맨>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탈라데가 나이츠: 릭키 바비의 발라드> <사고친 후에> <슈퍼배드>가 성공한 결과 ‘애파토우 사단’은 무시 못할 세력으로 자리잡았고, 2008년에도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등의 작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그의 위치는 초라하다. 미국식 코미디가 먹히지 않는 탓에 그의 작품들은 개봉조차 힘드니, 팬들은 <탈라데가 나이츠…>와 함께 출시된 <사고친 후에>와 <슈퍼배드>를 DVD로 보게 된 것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랠 판이다. 하룻밤 관계로 임신한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인 <사고친 후에>와 졸업 전에 여자친구를 사귀는 게 소원인 고등학생들의 모험담인 <수퍼배드>의 소재는 분명 진부하다. 그러나 두 영화가 미국영화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애니멀 하우스> <리치몬드 연애소동> <클루리스>에 못지않다. 등장하는 인물, 특히 남자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게임, 만화, 비디오, 인터넷에 환장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무능하고 한심할 뿐인 그들은 자라지 않는다. <사고친 후에>의 한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다 큰 아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데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애파토우와 친구들이 주제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다. ‘성’이라는 순수한 열정은 죄의식없이 묘사되고 있으며, 그들이 몸소 겪은 일을 영화로 만들었기에(극중 인물에도 실제 이름이 사용됐다) 인물을 희화화하기보다 따뜻하게 껴안는다. 그런 이유로, 풍자 끝에 변화와 성숙의 순간이 찾아와도 별로 겸연쩍지 않다. 자신을 책임질 줄 모르던 인물들이 조금씩 삶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의 주인공이 아껴둔 피겨를 포기하는 것처럼, <사고친 후에>의 남자에겐 사랑스런 아기가 생기고, <슈퍼배드>의 소년은 친구를 보낸 다음 소녀의 곁에 선다. <사고친 후에>와 <슈퍼배드>는 본능에 충실한 얼간이들이 득실거리는 싸구려 코미디가 아니다. 놓치면 후회할 작품이다. 그리고 애파토우와 함께 세스 로건, 에반 골드스미스, 마이클 세라, 폴 러드, 조나 힐, 그렉 모톨라, 빌 헤이더는 꼭 기억해둘 이름들이다. DVD는 영상과 소리가 수준급인 본편과 음성해설, 기타 부록으로 꽉 채워져 있다. 게다가 두 DVD는 극장판보다 긴 확장판을 담아놓았다. 부록의 경우, 영화만큼의 농담과 음담패설을 견딜 자신이 있는 사람만 방문하길 권한다. 알찬 정보로 가득한 음성해설을 위해 진지한 태도로 임하겠다던 감독의 약속은 5분도 지나지 않아 깨지고, 삭제/NG장면 모음(34분, 17분), 메이킹 필름을 포함한 잡다한 영상(18분, 37분)은 끝없는 장난의 연속이다. 즐기든지 마주 욕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