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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언 총정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전작 11편 총정리 ①
주성철 2008-02-2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언 형제가 <레이디킬러>(2004) 이후 꽤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영화다. 그 사이 그들은 올리비에 아사야스, 월터 살레스 등 여러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사랑해, 파리>(2006)에 참여했다. 그런데 ‘파리를 무대로 한 러브 스토리’라는 공통된 컨셉에 코언 형제가 포함된 것은 무척이나 생경해 보였다. 코언 형제는 그전까지 11편의 장편영화를 만드는 동안 단 한번도 미국이라는 공간을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로케이션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영화야말로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와 더불어 100% 미국영화라 해도 틀리지 않다(그래도 스코시즈는 <쿤둔>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껏 주로 미국 중서부 지역을 무대로 영화를 만들었던 코언 형제의 영화 속에 프랑스 파리의 풍경이 담긴다고 하는 것은 무척이나 획기적인 감상 포인트였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에서 미국 바깥의 풍경을 볼 것이란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감독들이 촬영지로 몽마르트르 언덕과 센 강변, 그리고 마레 지구나 차이나타운 등 야외 로케이션을 택할 때 코언 형제는 튈르리역 내부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삼으면서도 자신들의 영화적 고향인 미국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이다. 코언 형제의 영화가 언제나 전지적 시점의 풍경을 불현듯 등장시킴으로써 거의 운명론적인 정화와 속죄의 순간까지 이른다는 것을 떠올려볼 때 그것은 분명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짧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스티브 부세미는 마치 아무런 정보도 없이 프랑스에 뚝 떨어진 얼빵한 남자처럼 보였다(아마도 코언 형제 그들 자신?).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과 달리 전혀 프랑스에 적응 못하는 것은 물론 작품 속에서 사랑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가이드 책자에서 접하는 문구는 ‘프랑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 것’이라는 경고다. 건너편의 연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불어로 계속 시비를 거는데 거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 공포스럽다. 또한 입으로 파이프에 바람을 불어 일종의 공기총을 부는 소년은 계속 무표정하게 그를 쳐다본다. 그 소년은 정말 나중에 자라서 산소통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처럼 됐을지도 모른다. 그 작품을 통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이르게 된 코언 형제의 변화가 감지됐다면 지나친 말일까. <사랑해, 파리>의 그 에피소드는 스티브 부세미가 등장했다는 것만 빼면 코언 형제의 영화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영화 속 부세미는 파리의 낭만은 고사하고 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로 다시 절망적인 기분으로 미국으로 돌아갔을 거다. 그렇게 코언 형제 역시 다시 미국의 풍경으로 돌아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들었다.

코언 형제의 가장 과묵하고 비범한 영화

지난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가장 격렬하게 반응한 비평가는 역시 ‘노인’ 로저 에버트다. <파고>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던 그는 “<파고> 같은 걸작을 하나 더 만들었다”며 “많은 장면들이 완벽하게 구성된 나머지 당신은 그 장면들이 그저 계속되기만을 바라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최근 몇년간 로저 에버트가 이토록 침을 튀긴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특히 무자비한 살인마로 등장하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다 쓰러져가는 주유소로 들어가 동전으로 내기를 하며 늙은 남자 주인과 나누는 대화장면을 지난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이미 그가 그를 죽일 것이란 것을 확고히 인지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그 무시무시한 대화는 정말이지 소름 끼친다. 어쩌면 로저 에버트는 ‘<파고>를 넘어서는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코언 형제의 영화가 언제나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하거나, 다소 감상적인 익스트림 롱숏으로 시작했다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오프닝은 다소 충격적이다. 코언 형제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악역이라 할 수 있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낯선 이미지와 충격적인 살인은 코언 형제의 영화가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는 이정표와도 같다. 이에 대해 <카이에 뒤 시네마>의 뱅상 말로자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흑백영상과 비교해도 코언 형제의 영화 중 가장 다른 오프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코언 형제의 영화들을 잠시 잊어도 좋을 것 같다. 지난 1월 영국의 영화지 <엠파이어>는 코언 형제에 관한 특집을 마련하면서 그들의 지난 11편을 총정리했다. 그러면서 영화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코언 형제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에 대한 정리였다. 그들의 영화에 언제나 등장하는 것은 바로 비명(Scream!), 뚱보(Fattie!), 뚱보의 비명(Fattie screaming!), 구토(Vomit!), 기괴한 이름(Bizarre names), 이상한 헤어스타일(Crazy hair), 그리고 원(Round and round) 등이다. 아마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기괴한 헤어스타일이나 그의 공격으로 인해 뚫리는 열쇠구멍 같은 원의 이미지 정도만이 이전과의 접점들일 것이다. 혹은 그가 연기하는 ‘쉬거’라는 이름도 ‘기괴한 이름’에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밀러스 크로싱>(1990)을 제외하자면 코언 형제의 영화 중 가장 많은 살인이 일어나지만 전혀 비명을 들을 수 없다. 그러니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언 형제 영화의 이전작들에 늘 등장하던 비명이나 뚱보 같은 이른바 ‘잡다한’ 것들을 모두 걷어낸 간결한 영화다.

1980년의 미국 텍사스, 베트남 참전용사이기도 한 르웰린 모스(조시 브롤린)는 사냥을 하던 중 시체로 둘러싸인 정체불명의 현장을 맞닥뜨리게 된다. 거기서 그는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한 남자와 돈가방을 발견하게 되는데, 도움을 요청하는 남자를 뿌리치고는 <파고>의 8만달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240만달러가 든 가방만을 들고서 그곳을 떠난다. 하지만 두고 온 남자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새벽에 물통을 챙겨들고 다시 현장을 찾는다. 하지만 어둠 속에 정체불명의 트럭이 나타나 총탄 세례를 퍼부으며 그를 쫓아오기 시작한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무표정한 살인청부업자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도 동물적인 직감으로 그를 매섭게 추격하기 시작하고, 뒤늦게 관할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 역시 느릿느릿 그 뒤를 따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언 형제의 영화 중 가장 대사가 적고, 음악은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그들이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와 <레이디킬러>를 경유하며 종교음악 혹은 미국 전통음악에 큰 관심을 느끼고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용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무척 의외다. 음악은 물론 영화에는 별다른 소음이 없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건조한 바람소리와 쉬거의 산소통 무기의 격발음이다. 심지어 그들이 긴박감 넘치는 추격장면을 펼칠 때도 별도의 효과음이 없다. 그런 영화 전체의 침묵은 쉬거가 늘 들고 다니는 무기인 산소통의 순간적인 효과음을 소름 끼치도록 극대화한다. 그런 황량한 풍경은 마치 세상에 오직 그들 세명만이 남겨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만나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벤 월터스는 “사운드 편집은 획기적이며, 카터 버웰이 맡은 음악은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미묘할 것이다. 바람소리의 사용에 대해서만도 논문 하나는 거뜬히 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술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프로덕션디자이너가 바로 이전에 그 화려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를 작업한 제스 곤처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소 어안이 벙벙해진다. “캐릭터들 사이에서 전혀 튀게 보이려 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도대체 어떤 나라에서 저따위 머리를 한담?

하비에르 바르뎀의 헤어스타일

도덕성의 문제를 두고 영화에서 팽팽한 긴장을 자아내는 안톤 쉬거는 기이한 냉혈한이다. 독특하리만치 어두운 이 캐릭터는 강렬함의 극단에 서 있다. 원작에서도 그렇듯 그는 유머감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썰렁한 인물이다. 아무런 배경도 언급되지 않고 동기도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외국인이라는 것 정도만 암시된다. 코언 형제의 영화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냉혈한이다. <파고>의 피터 스토메어 정도가 그나마 가장 가까울 것이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쉬거를 인간 캐릭터로 생각하지 않았다. 순전히 폭력이 대표하는 것의 상징과 운명의 전달자로 봤다. 내가 도전해볼 만했던 것은 바로 그것을 인간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쉬거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아이디어는 토미 리 존스가 코언 형제에게 건넨 책에서 나왔다. 거기엔 1970년대 남부 사창가에서 찍힌 사진들이 있었고, 그중에 1979년 뉴멕시코 사창가의 인상적인 한 손님 사진이 있었다. 당시 하비에르 바르뎀의 회고에 따르자면 “나는 그 남자의 옷차림을 보고 있었는데 코언 형제는 그의 머리를 보며 ‘바로 이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이 씨발….” 그렇게 하비에르 바르뎀은 가발이 아닌 진짜 그 머리를 한 채 3개월 내내 생활해야 했다. 그리고 그 헤어스타일은 <아마데우스>(1984)나 <발몽>(1989) 같은 시대극은 물론,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등 여러 번 코언 형제와 함께했던 헤어디자이너 폴 르블랑에 의해 정교화됐다. 그가 살인자라는 느낌을 지우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한눈에 “도대체 어디 사람이야?”라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게 최종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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