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하나없는 이들에게 욕망은 치명적인 독이 되곤 한다. 달콤한 유혹 끝에는 언제나 곱절 이상의 쓰린 고통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일견, <IT 버블과 같이 잔 여자>의 미도리의 삶도 그렇다. 배우가 되고 싶어서 무작정 도쿄에 온 미도리(마쓰야 요코). 낮에는 시부야의 도시락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극단에서 뮤지컬 연습을 하지만, 그의 꿈은 곧 IT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젊고 매끈한 사장 사토루(가네코 노보루)를 만나면서 시들해지고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의 신혼생활도 곧 파탄에 이른다. 1990년대 IT 버블을 맞았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체없는 거품 시대에 진실한 사랑의 감정이 도대체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을 영화는 끝까지 지속하지 못한다.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미도리와 사토루의 데이트에 할당하고서는 급작스럽게 파국으로 몰아가는 건 제목만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인데도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영화의 마지막. 부잣집 마나님이 되었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 다음에 제발로 무대에 서게 되는 미도리 스토리에서 단순 통속극 이상의 감흥을 얻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버블에 기생해 살아가는 수많은 시부야의 발걸음들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인서트 말고 감독은 거품 시대, 헛된 사랑을 보여줄 만한 다른 아이디어는 전혀 없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