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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일상의 비극 <내부순환선>
정재혁 2008-02-20

앞뒤없이 꽉 막힌 일상의 비극

두 영주가 있다. 지하철 기관사로 일하는 남자 영주(배용근)와 클럽에서 디제이를 하며 사는 여자 영주(양은용). 어둠과 지하를 연상시키는 두 공간의 영주는 모두 답답한 현실에 갇혀 있다. 남자 영주는 자신이 운행하던 지하철 앞으로 한 남자가 뛰어들어 자살한 사실에 괴로워하며, 여자 영주는 클럽에서 우연히 본 한 남자에게서 옛 애인의 모습을 발견하며 빠져나오지 못한다. 사고 이후 떠오른 군대에서의 기억과 친구로 지냈던 진(정유미)의 애정 고백은 이들의 상황을 더 조여온다. 남자 영주는 사소한 일로도 여자친구와 싸우게 되고 여자 영주는 룸메이트로 지내던 진과 떨어져 살기로 한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과제가 조금의 여유도 없이 힘겹게 맞물려 있다. 2006년에 완성돼 2년이 지나서야 정식 개봉하는 <내부순환선>은 조은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두 남녀의 같은 이름, 서울의 위와 아래를 끝없이 돌고 도는 2호선 내부순환선 등 영화는 이야기의 의도를 예상케 하는 각종 상징들로 가득하다. 출구없이 막힌 현실과 소통의 불가능성이랄까. 어둠의 골을 반복되는 전자 사운드와 빛으로 채우는 클럽이란 공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사용된 상징의 틀이 너무 도식적이라 영화는 관념의 덩어리가 되고 만다. 새장에 갇힌 새나 “내가 진짜 누군지 알아요?”와 같은 대사들은 진부하고, 연극 무대를 의도한 몇몇 장면은 전체 이야기와 붙지 못한다. 특히 지하철과 클럽을 계속 오가면서도 두 공간의 공기나 분위기를 잡아내지 못한 점은 무엇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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