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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배우라서, 여자라서 더 행복해질 거다”
오정연 사진 이혜정 2008-01-30

<더 게임>에서 여전히 카리스마를 빛내는 이혜영

화려하게 미소짓고, 호탕하게 웃으며, 잘 찌푸리고, 종종 한숨을 쉬는 그는 마냥 따르고픈 큰언니 같았다. ‘이혜영식’ 우아한 말투와 평범한 엄마의 수다를 오가는 모습은 무대 위 모노드라마에 열중한 여배우의 모습처럼 낯설기도 했다. 그러니까 천생 배우. 중학교 1학년까지 함께 살았던 아버지는 감독 이만희였고, 배우의 꿈을 독려했던 어머니는 한때 배우였다. ‘모든 사람들이 너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라’고 가르쳤던 어머니 밑에서 이혜영은 당연하다는 듯 배우를 꿈꿨고, <티켓> <땡볕> <성공시대> 등에서는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배우였으며, 파리 생활과 결혼과 출산 등으로 90년대 공백기를 보낸 뒤에도, 변함없이 뜨겁고 한결같이 거침없는 모습은 스크린 안팎에서 거의 다르지 않았다. 복귀작으로 여겨졌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전직 금고털이 경선 이후에도 5년. 금융계의 거물 강 회장(변희봉)과 가난한 거리의 화가 민희도(신하균)가 서로의 몸을 맞바꾸는 스릴러 <더 게임>에서도 이혜영은 여전하다. 돈 때문에 결혼한 젊은 그녀 혜린은 1라운드에서 패한 민희도와 함께 재기를 꿈꾼다. 솔직히 말하자면, <더 게임>의 이혜영보다는, 눈부시게 화려한 여신과 동거 중인 생활인 이혜영쪽이 훨씬 궁금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애초의 호기심은 아무래도 좋았다. 새롭게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고, 알고 싶은 것은 더 많아졌는데도 왠지 만족스러운 느낌. 매력적인 사람과의 만남이란 게 원래 그렇다.

-기자시사 뒤 출연 분량이 많이 잘려서 아쉬움을 토로한 게 인터넷 뉴스로 떴더라. 삭제된 부분 중 어떤 장면이 가장 아쉬웠나. =혜린의 개인적인 고민이 전혀 안 드러났고, 마지막에 살해당하는 장면도 이틀에 걸쳐서 찍었는데….

-아, 폰카 사진으로만 나오는 그 장면? 혜린은 어떻게 죽은 건가. =칼에 찔려 죽었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남자에게 쫓기다가 경비아저씨한테 살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알고보니 그 남자도 한편이었던 거다. 특수제작한 소화기로 그 남자를 후려치는 장면도 있었다. 어쨌든 보기 전과 뒤가 기분이 참 다르다. 영화보기 전에는 되게 까불었는데 지금은 주눅들었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아무튼 막 신나서 인터뷰하고 싶지가 않다. 영화를 보지 말고 인터뷰할걸 그랬나. (웃음)

-영화는 어떻게 봤나. =재밌더라. 윤인호 감독 영화는 <아홉살 인생>과 <마요네즈>밖에 못 봤지만.

-일부러 찾아봤나. =윤인호 감독이 러브콜을 보내기에 어떤 감독일까 싶어서 봤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지만, 이런 사람이 스릴러를 한다면 기대할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선배님이 하신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서 존재감을 더하겠습니다” 그러기에 그렇다면 기꺼이, 싶었지. 근데 처음부터 말만 그렇지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웃음)

-감독에게 어떤 제안을 했나. =혜린의 고민이 뭔가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민희도가 강 회장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강노식에게 무엇 때문에 버림받았는지도 분명해야 하고. 그걸 알아야 강 회장에게 희생된 민희도와 혜린이 함께 일을 꾸미는 게 타당해 보이니까. 감독은 혜린이 ‘욕망을 좇다가 버림받는 여자’래. 그 욕망을 어떻게, 뭘로 보여줄 건데? 민희도가 처음 혜린을 만날 때, ‘마치 악마의 초대를 받는 듯’이라고 묘사는 되어 있지. 그럼 도대체 그 악마는 어떻게 민희도를 부를까. (낮고 가는 목소리로) “민희도씨”, 화면 가득 악마의 음성처럼 나지막하게 깔린다기에 그렇게 말했더니 너무 톤이 떨어진다더라. 그래서 (약간 경망스럽게) “민희도씨”, 아니면 (경망스럽게) “희도야?” (좌중 웃음)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 다양한 대본을 많이 받았다. 근데 둘째가 생겨서 할 수 없었고. 둘째 낳고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했는데, 아들을 생각하면서 하니까 너무 재미있더라. 이후 <패션70>을 하고, <더 게임> 대본을 봤다. 악마 같은 그 여자를 내가 하면 잘할 것 같더라. 그러나 이대로는 좀 그렇고, (시나리오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조건이었다.

-인터뷰 준비를 하려고 찾아보니 1962년생이더라. 윤인호 감독과도 별 차이가 안 난다. =윤인호는 63년생이니까 나랑 비슷하다. 근데 나를 무슨 고모뻘처럼 보더라. (웃음) 그리고 인터뷰할 때는 다들 “요즘 현장 많이 달라졌죠?” 이러면서 질문하거나 “참 안 늙으셨네요. 한 50 되셨죠?” 이런다. 근데 난 20대 때 이미 40대 역을 맡았거든. 그리고 또, 내가 여태껏 영화만 생각하고 살았냐면 그것도 아니야. 나도 라이프가 있었고 애들도 있어. 내 인생은 그렇게 뒤처져 있지 않다고. 지금도 남들과 같이 가고 있는데, 왜 뭐가 달라졌냐는 질문을 나한테 하냐고. 사실 난 아무런 갭을 못 느끼고, 그런 질문 자체가 너무 고리타분한 것 같다.

-비슷한 질문 잔뜩 있었는데, 다 빼야겠다. (웃음) 게다가 인터뷰 기사마다 할리우드 고전 여배우에 비유하는 문장이 많다. =난 명화극장 속 에바 가드너가 진짜 배우라고 생각했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한 거다. 배우를 꿈꿨고, 배우로 활동했던 엄마만 해도 당신이 할리우드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더라. 그런 엄마의 영향을 나도 받았겠지. 현실적으로 연극영화과에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본능적으로 모든 걸 접근한 거야. 그러니까 내 연기에서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 이를테면 (갑자기 한톤 높아진 우아한 목소리) 여보세요? 저, 연기해요. 지금 이거 연기하는 거예요. (웃음) 그걸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사람들도 그런 걸 개성으로 생각하고 인정해주던 시절이 있었던 거지. 근데 언제부턴가 그걸 퇴물처럼 여기는 것 같아. 사실 난 내가 특별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처음 영화를 시작했던 80년대 초만 해도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흔치 않았다. 거침없는 연기에 대해 후회는 없다지만, 그렇게 이미지가 굳어진 상황이 답답하지 않나. =난 있는 거나 잘하자, 있는 거라도 잘해야 한다, 고 본다. 내 모습이 어찌보면 개성이고 어찌보면 매너리즘이지만, 그거라도 완벽하게 발휘될 기회가 있었느냐는 거다.

-80년대에 비해 지금은 여배우가 맡을 역할이 많이 다양해졌는데, 후배들이 부럽진 않나. =‘옛날 같았으면 그거 다 내가 했을 텐데’ 이런 건 있지. (웃음) 아, <사랑니>의 정지우 감독이랑은 한번 같이 일하고 싶더라. 김기덕 감독도. 이창동 감독 영화 속 여자들도 좋다. 그리고 누구더라? 임상수? 홍상수? 하여튼 둘 다 좋고.

-<더 게임>의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좋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감독을 신뢰하고 이해하고 배려한다. 모르겠다. 아버지가 감독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항상 감독을 신뢰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얘기는 촬영 전에 다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뭔가.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해 환상 같은 게 있다. 남아 있는 영화만 봐도, 남들과 분명 다른 영화고 완벽주의자의 느낌이 있지만, 만족스럽진 않다.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감동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사라진 것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은 거지.

-감독 이만희의 영화에 출연 제의를 받았다면. =이만희 같은 감독이라면 당연히 함께 영화를 찍어야지. 여배우를 그렇게 다루는 감독은 지금도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문정숙이라는 여.배.우.의 존재를 봐라. 어떤 여배우가 그런 걸 거부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리 아버지는 페미니스트였을 거다. 다 들은 얘기지만, 현장에서 굉장히 리더십이 있으면서도 다정하고 소품 담당 스탭과 이야기할 때도 꼭 둘이서만 소곤소곤 얘기했다더라. 스탭이며 배우가 자기를 이해하도록 만들고, 큰소리치는 적은 없었다고.

-<더 게임> 후반부에서는 젊음의 소중함이 영화의 주제임을 깨닫게 된다. 배우 이혜영의 20대는 거침없이 선택하며 후회도 없어 보인다. ‘그때 내가 참 철이 없었구나’ 싶진 않나. =철이 없었지. 근데 어린 게 그런 거 아닌가.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때랑 지금이 똑같다는 거다. 어릴 때는 내가 어리다고 생각 안 했고, 지금은 늙었다고 생각 안 한다. 그리고 지금이 더 행복하고, 앞으로 더 행복해질 것 같다. 호호. 근데 애들을 좀더 일찍 낳았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그랬으면 지금쯤 많이 컸을 텐데. 딸 하연이가 11살이고 작은애가 아들인데 6살이다.

-애들이 어떻게 컸으면 좋겠나. =나는 우리 애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나에게 능력을 달라고, 엄마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사실 아들은 아들이니까 거는 기대가 있지만, 딸은 자칫 잘못하면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그럴 수 있다. 근데 난 오히려 딸을 여자대통령은 안 돼도 대통령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용기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이 배우하겠다고 그러면 예전에 어머니가 하셨듯이 독려할 수 있겠나. =글쎄. 영화를 통해 아버지처럼 만족스런 업적을 쌓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일단 지금으로서는 바라는 사람은 없다. 어쨌거나 애한테 맡겨야지.

-그게 생각처럼 쉽진 않을 텐데. =당연하지. 맡기긴 뭘 맡기겠어. 들들 볶고 난리겠지. 그러니까 기도하는 거다. 그러지 않게 해달라고.

-애들 학교에 찾아가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겠다. =이렇게 일하다가 차려입고 가면 좀 부담스러워 한다. 엄마 역할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엄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 애들은 어떻겠어, 엄마가 저러고 돌아다녀서’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또 일하는 엄마들은, ‘어휴, 얼마나 재미없겠어. (웃음)’ 이런 식이지. 근데 난 두 가지 다 해봐서 그 두 심정을 너무나 잘 알지. 화장 안 하고 청바지 입고 애들이랑 다니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 그러니까 내 이런 이미지가 오히려 사생활을 보호한다. “나, 배우하러 간다” 이러고 나가면 애들이 “누구야?” 그런다. (웃음)

-배우 이혜영 인터뷰할 사람을 정할 때 내부에선 무섭다고 꺼리기도 했다. =우리 학부형 중에도, “하연이 엄마 오늘 좀 무섭다” 이러는데, 사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떡하나. 화장을 안 해도 눈은 무섭다고 그런다. 우리 아빠 눈을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아빠나 나나 눈이 크다기보다는 이렇게 눈 앞부분이 넓고 길다.

-어릴 때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나. =잘생겼다고, 얼굴이 훤하다고 그랬다. 망치처럼 딴딴하게 생겼다고. (웃음) 초등학교 3학년 때 파마할 때 머리에 뭐 쓰고 앉아 있었더니, 어떤 아줌마가 “어머 요즘은 남자애들도 파마를 하네” 이랬으니까. (웃음) 우리 아들은 만날 나를 꼭 끌어안고 자는데, 나를 가만 보더니 “엄마, 남자 같아” 이러는 거야. 다음날에는 또 한참 들여다보더니 “엄마, 아기였을 때 남자였지?” 으하하하. (좌중 웃음)

-남편은 프랑스에 공부하러 갔을 때 만났다고 들었다. =공부는 무슨. 그냥 간 거지. 1995년에 가서 97년 10월에 왔다. 당시에는 ‘난 더이상 여기서 배우로서 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호응이나 사랑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는데, 참 오만했지.

-혼자 삐친 상태였나보다. 그때 남편은 유학 중이었나. =출장 왔다가 소개로 만났다.

-이미 배우 이혜영을 알고 있었겠다. =그때 그 사람은 내 영화 본 적도 없고, 내가 SBS 개국 초창기에 <8시 뉴스> 진행했던 것만 기억하더라. 뉴스 앵커라니까 나를 되게 똑똑한 사람으로 알았던 것 같다. (웃음) 나중에는 서울에서 전화가 왔더라. <땡볕>이라는 영화를 TV에서 한다고, “지금이랑 똑같네” 그러더라. 그게 스물두세살 땐데, 내가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그 사람 만난 일이다. 중간에 삐걱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둘째 생겼다니까 누군가 그러더라. “어이구, 사네 마네 하더니 또 어떻게 애를 가졌네.” (웃음)

-<피도 눈물도 없이>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요즘에는 내가 천재가 아니란 걸 알았다”는 말을 했던데. =옛날엔 내가 타고난 배우라는 생각에 객기를 많이 부렸다. (웃음) 어릴 때 할머니랑 살았는데, 1976년에 88살로 돌아가신, 아주 옛날 분이셨다. 염할 때 할머니 맨발을 처음 봤을 정도로 늘 버선을 신고, 한복 입고, 머리에는 비녀 꽂고, 참빗으로 머리 빗어서 빠진 머리카락은 손으로 모아서 불에다 태울 정도로 옛날식이었다고. 막내 혜영이는 똑똑해서 유치원 안 가도 된다고 해서 만날 할머니랑 콩나물 다듬고, 놀 때는 꼭 고무신을 신어야 했다. 아, 진짜, 완전, 할머니 돌아가시면서 뭔가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중2 때였는데, 생각해보면 당시의 억눌림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와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식으로 변한 거지.

-21살 때 데뷔작을 찍으면서 키스신을 앞두고 “아무나 할 수 없는 키스장면이 되도록 가르쳐주세요”라는 말을 했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렇지. 키스라든가 노골적인 성애묘사… 후후 그런 것도 일종의 객기였다. 그런 척, 영화에서 본 거 흉내내는, 일종의 쇼였다. 그러니까 두렵지도 않았지, 그냥 연기니까. 그런 장면 찍을 땐 감독들이 카메라 앞에서 이랬다. (손짓과 몸짓 표정을 더한 재연) “어~ 어, 그래, 입 좀 더 벌리고~ 아… 이제, 인상 쓴다~.” (웃음) 경험이 하나도 없었던 애들도 감독 시키는 대로 ‘더 벌린다 , 인상 쓴다, 턱이 더 돌아간다, 더더더 올리고’ 이런 걸 따라했다. (웃음) 옛날에는 진짜, 호호, 그런 영화 많았어.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러지 않을 거라는 얘긴가. =이제 다시 한다면 객기를 부리지 말고 진짜처럼 해야지, 하하하. 경험도 많으니 좀더 자연스럽지 않겠나. 근데 요즘엔 그냥 키스신도 없더라. (웃음)

-그런 태도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내가 아버지를 흉내내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직접 본 아버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흉내내려고 한 거지.

-고독하고 외로운 천재예술가의 느낌 말인가. =그렇지. 이상한 건, 사람들은 고독한 아버지를 기억하는데 난 우리 아버지를 잘 웃는 사람으로 기억하거든.

-배우를 계속해야 한다는 굳건한 포부 같은 게 있나. =한번도 그만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럼 배우로서 최고가 되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나. =(곧바로) 최고가 될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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