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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승리의 드라마 <찰리 윌슨의 전쟁>
오정연 2008-02-06

평범한 정치인과 제멋대로 CIA 요원은 어떻게 세계 역사를 변화시켰나

영화가 시작하면 명예 CIA 요원이 되기 위해 연단에 선 찰리 윌슨(톰 행크스)이 보인다. 텍사스 출신 하원의원인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침공을 막아냄으로써 냉전을 종결시킨 공로로 그 자리에 섰다. 여기는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CIA 본부다. 8년간 10억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퍼부었던 그의 모든 활동이 비밀리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마약과 섹스 스캔들이 연루된 알코올 중독자 민주당 의원이, 망나니 같은 CIA 요원(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미모의 극우반공주의자 로비스트(줄리아 로버츠)와 손잡고, 이집트며 이스라엘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돕는다는 아이러니의 실화를 정치코미디로 그려낸 <찰리 윌슨의 전쟁>은 감독 마이크 니콜슨이 아닌 각본가 아론 소킨의 영화다. 사회와 개인이 연관된 넓은 의미의 정치를 고찰했던 니콜스 감독(<졸업> <실크우드> <프라이머리 컬러스> <클로저>)의 연출력보다는 민주당이 집권한 백악관 집무실의 생생한 풍경 안에서 하자가 있는 개인들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과정을 묘사했던 각본가 소킨(<웨스트윙>)의 연금술이 중요하다. 적당히 젠체하면서 짐짓 속물인 양 위장하는 속사포 같은 대사들에는, 관객 각자의 깜냥 안에서 저마다의 재미를 선사하는 소킨의 인장이 확연하다. 치명적인 약점을 지녔기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배우의 면모도 흥미롭다. 실존 인물과 영화 속 캐릭터를 철저하게 분리했다는 소킨은 평범한 미국인의 얼굴을 대표하는 톰 행크스의 캐스팅을 전제한 채 시나리오를 썼다. <클로저> 이후 간만에 복귀한 줄리아 로버츠는 <귀여운 여인>으로 미국식 신데렐라 스토리의 아이콘이 된 바 있다. 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두 배우의 출연작이 미국에서 거둔 수익이, 윌슨 의원이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몰아내기 위해 사용한 금액을 능가했다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지적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찰리 윌슨의 전쟁>은 세계를 변화시킨 개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다. 레이건 정부의 대외정책을 대표하는 윌슨 의원의 분투가 알카에다와 9·11의 빌미가 되어주었다는 현실적인 비판에 귀기울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첨예한 현실정치를 소재로 삼는 최근 몇년간 할리우드의 트렌드 안에서 <찰리 윌슨의 전쟁>과 근접한 영화는, 중동 정치의 복잡한 역학을 뜨거운 열정으로 고찰한 <시리아나>가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폭탄테러를 CIA 스릴러의 소재로 삼았던 <킹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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