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슈퍼맨(황정민)이다.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태안반도에 퍼진 기름 찌꺼기를 제거할 수 있거나 조지 부시를 지구 바깥으로 던져버리지는 못한다. 그는 사실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자기가 슈퍼맨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미친놈이다. 맨홀 밑에 괴물이 산다며 동분서주하고 주유소 앞 풍선 인형을 향해 돈키호테처럼 달려들 때는 영락없이 그렇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대체로 남들이 잘 하지 않으려는 작은 선행들을 하기 때문이다. 길가는 노인 짐 들어주기, 건널목에서 차 막아주기, 다친 사람 병원에 데려가기, 소매치기 잡아 주기 등등. 엉터리 감동을 짜내는 방송 다큐 프로듀서 송수정(전지현)이 이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그럴싸한 방송용 취잿거리로만 생각했는데, 그에게 아픈 과거가 있다는 걸 하나둘 접하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그의 머릿속에 박힌 크립토 나이트(이 영화의 슈퍼맨은 원작 <슈퍼맨>에 나오는 대머리 악한이 자기 머릿속에 그걸 심어놓았다고 믿고 있다)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가 슈퍼맨임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여 이 세상에 또 한명 늘어나게 된다.
원작자 유일한이 PC통신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자신의 소설집 <어느 날 갑자기> 중 한편으로 동명 수록했고 그게 이 영화의 원작이 됐다. 하지만 송수정과의 관계, 크립토 나이트가 머릿속에 박힌 사연 등 굵직한 영화의 모티브는 각본 과정에서 새로 얼개가 짜여졌다. 한편, 슈퍼맨을 연기하는 황정민은 예의 그 인간적 활기를 담는 데 주력했고, 송수정이라는 인물이 조력자로서의 캐릭터임을 알고도 선택한 전지현은 용기있는 시도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가능성만 남겼다). 영화는 텔레비전에서 흔히 방영되는 ‘방송 다큐’의 형식을 빌려 전개하되, 착한 망상과 멀쩡한 무관심 중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묻고 싶어한다. 따뜻함이라고는 없던 송수정이 슈퍼맨을 알고 나서 동화되어가는 과정에 주력한다. 사실 풀어가기 쉬운 이야기가 아닌데도 영화는 재치있는 인물묘사와 뛰어난 편집감으로 흥나게 초·중반을 몰아간다. 그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생기롭다. 그런데 슈퍼맨의 상처를 알아가는 과정과 그의 영웅담이 담긴 후반부는 매력이 덜하다. 아니, 누구라도 후반부는 좀 늘어진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음악에 너무 기댄다. 감독은 시사회에서 관객의 반응을 본 뒤 영화를 다시 손봤다는데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