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그것은 발견하기 나름이다. 여류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는 그러한 사진미학을 구축해 20세기 미국 사진예술의 역사를 뒤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완성되고 안정적인 육체가 아니라 부서지고 정상의 범주를 일탈한 육체들- 기인, 기형아, 성전환자- 을 따라다닌 그의 사진은 미/추의 경계를 무시하고 모든 존재를 직시했다.
어떻게 이런 예술가가 탄생했을까. 영화 <퍼>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디앤 아버스에 관한 친절하고 교육효과 높은 전기물이 아니다. 남편의 사진작업을 도우며 두 아이를 기르던 평범한 주부가 도발적인 예술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바꾸게 된 어떤 결정적 순간을, 픽션을 더해 재구성한 것이다. 디앤(니콜 키드먼)은 뉴욕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가발제작자 라이오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가까워진다. 디앤은 온몸이 털에 뒤덮인 다모증 환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깊이 사랑하게 된다.
상상과 사실의 비율이 어떻게 되든 이 이야기는 기이하고 특별한 데가 있다. <퍼>를 보다 느끼는 지루함의 이유는 소재의 도발성과 화법의 평범함이 절충지대를 찾지 못한 탓인 것 같다.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의 도발을 가장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동시대 작가를 찾으라면 데이비드 린치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일 것이다. <퍼>는 어떤 대목에서 이들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었을 법한 영화를 상상하게 한다. 평범함에 억눌린 삶을 탈출하기 원했던 디앤의 욕망처럼, <퍼>를 보고 있는 관객의 욕망도 탈출을 원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