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영화를 새롭게 업데이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천만에. 배경 하나만 바꿔보시라. 이를테면 겨울이면 한달간 해가 뜨지 않는 북극의 도시는 어떤가. 식료품(인간)도 풍족하고 위험요소(햇빛)도 없으니 뱀파이어들에게는 이만한 식도락 천국이 어디 있겠나. 스티브 나일스와 벤 템플스미스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는 그처럼 간결한 아이디어 하나로 오래된 장르의 컨벤션을 완벽하게 업데이트하는 영화다. 극야(極夜)를 맞이한 알래스카의 소도시 배로우. 아내 스탤라(멜리사 조지)와 불화를 겪고 있는 보안관 에벤(조시 하트넷)의 의무는 아이들과 중·장년층만 남은 암흑의 도시를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가 않다. 마을의 전기설비가 모조리 부서지고 헬리콥터는 망가진 채 발견되며 썰매 끄는 개들은 학살당한다. 범인은 다운증후군 환자의 얼굴에 곰치의 이빨을 번득이는 뱀파이어들로, 해가 진 알래스카주 마을들을 하나하나 휩쓸며 식도락 여행을 즐기는 중이다.
<하드 캔디>를 통해 호러 장르의 기린아로 데뷔한 데이비드 슬레이드의 전략은 분명하다. 좀비영화를 재발견한 <새벽의 저주>와 <28일 후…>의 방식을 빌려서 뱀파이어 장르를 변용하는 동시에 <300>이나 <씬 시티>처럼 그래픽 노블의 비주얼을 실사로 다시 창조한다는 것이다. 전략은 꽤 성공적이다. 원작의 회색빛 음영을 살려낸 차가운 도시에서 벌어지는 학살극은 판타지로 버무린 홀로코스트처럼 을씨년스럽고 종종 섬뜩하다. 하지만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이야기는 종반부에 도달할수록 제풀에 지치는 기색이 역력하다.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속에 30일간의 사투를 밀어넣는 가장 좋은 방식을 개발하지 못한 탓이다. 슬레이드는 느슨하게 날들을 건너뛰며 에피소드들을 이어붙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쇼크효과도 슬슬 약발이 떨어진다.
그래도 이만하면 썩 괜찮은 장르적 업데이트인데다가 몇몇 장면은 시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크레인에 탑재된 카메라가 마을을 부감으로 따라가며 담아내는 초반부의 대학살극은 입이 딱 벌어진다. 여치처럼 달아나는 인간들의 모가지를 사마귀처럼 뛰어다니며 물어뜯는 뱀파이어들. 그리고 하얀 눈밭에 흘뿌려지는 검붉은 피의 제전. <새벽의 저주>의 오프닝 시퀀스와 함께 21세기 호러영화의 가장 우아한 장면으로 남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