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첼리스트 라일라(케리 러셀)와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루이스(조너선 리스 마이어스)는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눈다. 그들이 한눈에 사랑에 빠진 것은 가을날 뉴욕의 청명한 공기 때문이었는지도, 워싱턴스퀘어에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던 구슬픈 하모니카 소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이 밴드 멤버와 어울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라일라의 아버지 때문에 두 사람은 하룻밤 사랑만을 남긴 채 헤어진다. 한번의 운우지정으로 임신한 라일라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고, 딸의 미래를 걱정한 아버지는 아이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낸다.
본격적인 줄거리가 시작되기 전의 전사(前史)만 훑어도 <어거스트 러쉬>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독한 신파극이거나 환상으로 가득한 동화, 둘 중 하나임이 명확하다. 라일라와 루이스의 사랑의 결정체인 어거스트 러쉬(프레디 하이모어)가 하루 만에 악보를 익힐 수 있을 만큼의 음악 천재라는 설정이 동화쪽이라면, 그토록 사랑한다면서도 이 네트워크의 세상에서 만나지 못하는 두 연인의 이야기는 신파쪽에 가깝다. 하긴 <인어공주>나 <소공녀> 같은 동화, 특히 이 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한 <올리버 트위스트> 또한 어느 정도 신파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떤 사람들이 동화를 믿듯 나는 음악을 믿어요”라는 어거스트의 대사처럼 <어거스트 러쉬>는 음악을 매개로 한 현대적 동화라 할 수 있다.
<어거스트 러쉬>는 세상만물이 음악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어거스트가 낯선 뉴욕에 와서 부모의 추억이 담긴 워싱턴스퀘어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나 그곳의 거리의 악사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위저드(로빈 윌리엄스)가 11년 전 그 하모니카 연주자였다는 것이나 모두 어거스트가 “음악을 따라서” 발걸음을 옮긴 결과물이다. 그러니 “내가 음악을 연주하면 부모님이 들을 거예요”라는 어거스트의 이야기는 단지 순수한 소년의 바람을 넘어 복선에 가까운 것이 된다. <어거스트 러쉬>는 음악에 이처럼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음악은 언어나 그림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매료시킨다”며 음악의 비논리적인 신비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까지 비논리적일 필요는 없는 법이거늘 <어거스트 러쉬>는 사건을 느슨한 고리로 연결시켜놓고 ‘음악은 신비한 거니까’라고만 주장한다. 정말이지 <어거스트 러쉬>를 설득력있게 받아들이려면 음악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