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목이 아니다. 진짜 열한 번째 엄마다.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기초생활비조차 ‘바다이야기’에 고스란히 바치고, 술이라도 한잔 들이켜면 영락없이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를 둔 재수(김영찬). 그런 아버지가 엄마라고 데려온 여자들에게 열한살 재수는 말한다. 여기는 살 곳이 못 되니 어서 짐싸서 떠나라고. 굳이 손꼽아 세면 열한 번째 엄마인 여자(김혜수)는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가라고 해도 안 간다. 갈 데가 있으면 이런 집에 살러 왔겠느냐고 외려 큰 소리다. 그것뿐이랴. 종일 잠만 자는 것도 모자라 재수가 아껴놓은 식권까지 손을 댄다. 그야말로 식충이다. 못난 아비만으로도 모자라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모를 ‘열한 번째 엄마’까지 자신에게 손을 내민다. 게다가 남의 속도 모르고 운전면허 필기시험만 8번이나 떨어진 옆집 총각 백중(황정민)까지 ‘열한 번째 엄마’에게 껄떡대니 재수로선 미칠 노릇이다.
<서프라이즈> <거칠마루> 등을 연출했던 김진성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열한번째 엄마>는 익숙한 가족영화라기보다 독특한 멜로영화다. “엄마 소리 들으면 다 올라올 것 같다”던 여자는 “지 어미 닮아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린다”며 어린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남자를 막아선 뒤로 재수와 가까워진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여겼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고,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저 잠자리나 같이 한번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자에게 접근했던 백중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성적 관심은 무장해제를 한 대가로 자신 대신 재수를 아버지로부터 지켜달라는 여자의 부탁을 받고서 사그라지고, 어디로 여자를 팔아넘길 궁리만 하던 ‘열한 번째 엄마’의 남자 또한 결국 교화한다. 세 남자에겐 결국 자신을 품어줄 따뜻한 엄마 혹은 연인의 품이 필요했던 셈이다.
스스로 버텨 설 힘이 없으니 누군가가 제 어깨에 기대는 것이 불편했던 이들, 의사(疑似) 가족을 잠시나마 꿈꿨던 이들의 바람은 결국 비극 위에서만 축조가 가능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비극만은 아니다. 재수의 ‘열한 번째 엄마’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병색이 완연한 여자는 결국 그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첫 번째 엄마’는 도망간 게 아니라 죽었다고 아버지 앞에서 울면서 되뇌어야 했던 재수에게 ‘열한 번째 엄마’의 죽음은 기억 속에도 없는 ‘진짜 엄마’의 존재를 실감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그래서 재수는 웃으며 달릴 수 있다. 이야기보다, 감정보다, 한참을 앞서 달리는 신파조의 음악을 참아낸다면, 엄마 잃고 엄마 찾은 소년의 미소를 받아들이기 더욱 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