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07’의 세 영화가 <메모리즈>라는 제목으로 다시 관객을 만난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2000년 시작된 이래 봉준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에릭 쿠 등의 감독이 참여해온 전주영화제의 프로젝트로, 선정된 감독에게 주제와 형식의 제한없이 개인적인 작업의 기회를 제공해온 기획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유럽의 세 감독이 참여했다. 독일의 하룬 파로키 감독의 <베스터보르크 수용소>는 2차대전 중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당시 유대인 재소자가 직접 찍은 영상을 재구성한 것이다. 영상 속의 재소자들은 놀랍게도 건강한 노동과 춤, 연극, 노래 등의 여가를 누리고 있다. 이건 어디서도 공개된 적 없는 모습이다. 파로키 감독은 가스실 입구, 재소자들의 비극적인 표정 등의 관습적인 장면을 배제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재소자들의 얼굴 위로 그들의 섬뜩한 운명을 불현듯 침투시킨다.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토끼 사냥꾼들>은 포르투갈의 두 이민자 남성의 대화로 이들이 처한 삶의 조건을 보여준다. 일자리도 잃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들의 출구없는 현실이, 뒤통수를 치는 결말과 함께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유진 그린 감독의 <편지>는 앞의 두 작품과 퍽 다른 톤을 띤다. 얼굴을 모르는 남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한 소녀는 그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난다. 영화는 사랑에 대해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어체의 대화로 진행되며, 정갈하게 촬영된 주인공들의 표정과 유일한 배경인 그들의 방은 마치 그림엽서처럼 곱다. 세편 모두 상당히 낯설지만, 영화 만들기의 타성을 흔들려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접근법이 신선한 충격과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