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4일, 장소는 미사리 조정경기장. 수많은 인파가 마치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엑스트라들이다. 연출부의 사인이 오가면 외투를 둘러쓰고 있던 배우들과 수십명의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옷을 벗고 촬영을 준비한다. 매서운 초겨울 날씨 속에 이들은 한여름의 추격신을 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마치 땀이 나는 것처럼 군데군데 물을 적신 김선아의 추위는 더하다. 이날의 촬영신은 곗돈을 찾아 나선 봉촌3동 걸스카우트단 최미경(김선아), 이이만(나문희), 오봉순(이경실), 강은지(김은주)와 그녀들의 피 같은 곗돈을 들고 튄 계주 성혜란(임지은)이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그렇게 피크닉 인파를 뚫고 질주한 미경은 혜란을 잡자마자 바닥에 쓰러뜨린 뒤 멱살을 부여잡는다. 한편, 봉촌3동에서 벌어진 이 곗돈 사기사건은 비슷한 시기 벌어진 20억원 상당의 오피스텔 분양사기사건과 한데 엮인다. 그리하여 걸스카우트단은 성혜란을 위시한 프로사기꾼들과 맞서게 된다.
김선아의 말을 빌리자면 <걸스카우트>는 바로 ‘네 여자의 <범죄의 재구성>’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평범한 여자들이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코믹범죄극인 것. 아줌마 특유의 무데뽀 정신에서 비롯된 다양한 삶의 지혜들은 사건을 헤쳐나가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최근 다수의 여자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들이 없었다. 남자들 없는 데서 여자들만 주고받는 대화도 많고, 그러면서도 섬세한 터치도 잘 살아 있고. 하여간 누구나 겪고 공감할 만한 요소들이 많은 신나는 여자영화”라는 게 김선아가 말하는 포인트다. 늦깎이 데뷔하게 되는 개그맨 출신 이경실도 “예전에 많은 여성들이 등장했던 <개같은 날의 오후>를 보면서 속이 후련했던 경험이 있다. <걸스카우트> 역시 그런 쾌감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올 여름 변덕 심한 날씨 탓에 가장 고생했던 <걸스카우트>는 봉촌3동 네 여자의 거침없는 수다와 액션을 앞세워 내년 구정 즈음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배우 나문희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이야기란 점이 끌렸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누가 모였느냐가 중요하다. 하나같이 쟁쟁하고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맛을 느끼고 싶었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서민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물론 주인공 중 가장 나이가 많지만 영화에서처럼 돈 떼어본 적은 없다. (웃음) 액션장면도 꽤 많아서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드디어 내일 와이어 액션 장면이 있다.
-김선아와는 벌써 3번째 작업이다. =<S다이어리> 때는 엄마였고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남자친구의 엄마였다. 이번에는 동네 어른인데 친한 이웃이라 ‘이모’ 정도라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김선아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호흡 잘 맞고,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고, 하는 얘기는 이제 더할 필요가 없다. (웃음) 확실히 친해질수록 감정 표현을 하는 데 더 수월한 것 같다. 항상 나에게 먼저 뭘 맞춰보자고 하는 식인데 이번 영화 제의도 먼저 해줬다.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때는 세 남자를 이끌었는데 <걸스카우트>에서 세 여자와 다니는 기분은 어떤가. =접근방법이 완전히 반대라고 보면 된다. 그때는 기를 세게 해서 남자들을 제압하는 힘이 있어야 했다. 반면 이번에는 어른스럽게 나보다 어린 여자들을 포용하는 역할이다. 아들도 있는 지극히 평범한 엄마다. 그래서 때론 우유부단하고 끌려다니기까지 한다. 다른 세 배우가 계속 나에게서 뭘 배웠다고 추어올리는데 오히려 내가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