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동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불감증인 건 아니니 걱정마시길. <색화동>은 에로영화가 아니라 에로영화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리는 영화다. 넓게 보자면 주류를 꿈꾸는 비주류 영화인의 이야기고, 더 넓게 보자면 낯선 곳에 불시착한 이방인의 좌충우돌 소동극이다. 영화과 학생인 진규에게 충무로는 더없이 먼 세계다. 애써 준비한 시나리오는 여러 공모전을 돌며 낙방소식을 전하고, 여자친구는 비전이 없는 진규를 탓하며 떠나버린다. 같은 과 친구들이 “너 잘되면 나 좀 끌어주라”며 내뱉는 희망도 무기력하다. 진규는 우선 돈도 벌고 경험도 쌓자는 생각에 에로영화 현장을 찾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의 원칙과 달리 스토리를 생각하지도 않고 착실한 준비도 안 하고 배우의 연기보다는 피부상태에만 신경을 쓴다. 게다가 에로영화란 타이틀 덕분에 그들은 ‘벌레 취급’을 당하는가 하면 촬영장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불청객들은 눈으로 배우들을 농락한다. 열심히 해보자고 굳은 결심을 한 진규도 날이 갈수록 실망은 커져만 간다.
<색화동>은 에로영화사 클릭에서 <깃발을 꽂으며> <만덕이의 보물상자> <로또걸> 등을 연출했던 공자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그만큼 감독이 전하는 사실적인 에피소드들은 그동안 에로영화를 눈으로 즐겼을 뿐 다른 세계로 받아들여온 관객에게 흥미롭게 보일 만하다. 대본 리딩을 하면서도 실제 옷을 벗고 베드신을 시연하는 것이 흔히 풍문으로 떠돌던 이야기의 재연이라면, 하루에 30신도 찍었다는 극중 황 감독의 자랑은 놀라운 무용담이다. 그런가 하면 “내가 썼던 <쥬라기 공원>의 시나리오를 스필버그가 베꼈다”는 식의 농담들은 실없이 보이면서도 애처롭다. 하지만 <색화동>은 그러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묘사하고 배치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영화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에로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에로영화요? 창녀들 데리고 찍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 하면 안 돼. 소주 뿌려버린다!” 누구나 보고 느끼지만,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은 세계를 드러내겠다는 야심으로 가득 찬 첫 장면이다. 하지만 <색화동>은 에로영화 업계 종사자들의 비루한 일상과 애환을 엿볼 뿐 그동안 에로 비디오를 검은 비닐에 숨겨 보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지도 않고, 그들에게도 나름의 세계와 프로의식이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하지 않는다. 아예 <깃발을 꽂으며> 등을 통해 보여준 과격한 키치로 무장한 영화였다면, 웃음만은 격하게 동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