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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함이 묻어나는 환상 <판타스틱 자살소동>

자살+소동+환상=일단 살자!!

박수영, 조창호, 김성호 세 감독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영화. 첫 번째 에피소드 <암흑 속의 세 사람>(연출 박수영).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늦잠을 자고 시험시간에 들어가지 못한 여고생(한여름)이 낙담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멀쩡하다. 그 뒤부터 이 여학생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별난 남학생(타블로) 하나가 나타나 학교를 폭파하겠다고 하고, 양호 선생(김가연)은 갑자기 여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해오고, 학생 주임(박휘순)은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겁에 질려 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소녀의 주변에 몰려든 걸까. 두 번째 에피소드 <날아라 닭>(연출 조창호). 자살하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경찰(김남진), 자살 직전 한 무리의 괴한들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우연히 알게 되고 그들과 대치하게 된다. 총알은 세개 남았을 뿐인데 남자는 지금 당장 상대방을 겨눠야 할 처지다. 그의 자살을 위한 마지막 총알은 과연 남을 것인가. 세 번째 에피소드 <해피버스데이>(연출 김성호). 생일을 맞은 게이 할아버지(정재진)는 또래의 친구들 중 누구도 자신의 생일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인생무상의 기분을 느끼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그는 여행길에서 악인들에게 쫓기는 청년(강인형)을 만나고 그 대신 자신이 죽어주기로 결심하고 바닷가로 뛰어든다. 이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박수영은 그의 단편 <핵분열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코미디를 만들었다. 한편 조창호의 <날아라 닭>은 우의적인 아포리즘에 가깝다. 대사는 거의 없으며 이미지의 연쇄로 이 남자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돋보이게 한다. 그의 훌륭한 장편데뷔작 <피터팬의 공식>을 생각나게 한다. 반면, <거울 속으로>라는 장편 공포영화를 만든 바 있던 김성호는 온화한 미담 <해피버스데이>로 새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판타스틱 자살소동>에는 작품들 사이에 한 가지 결연한 약속, 그러니까 자살을 다루되 절망을 그리지 말자는 무언의 합의 혹은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자살과 소동이라는 말은 여기서 무섭거나 공포스럽거나 절망적인 무엇이 아닌 그냥 유쾌함이 묻어나는 환상이다. 그러나 이 유쾌함을 만끽하기에 세 작품 모두 어딘가 좀 부족해 보이는 것도 부인하기는 힘들다.

<암흑 속의 세 사람>은 재미있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서사가 우격다짐이다. <날아라, 닭!>의 아포리즘은 좀더 농밀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해피버스데이>는 노인 캐릭터가 너무 정겹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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