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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자칼의 세상

<레오파드>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레오파드>를 봤다. 상영시간이 3시간 넘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대작 <레오파드>는 19세기 남부 이탈리아를 무대로 삼은 이야기다. 그 자신 유명한 귀족 출신인 비스콘티는 <레오파드>에서 몰락하는 귀족 가부장의 마지막 모습을 경건하고 우아하게 보여주는 데 반해 새로운 권력층이 될 자본가 계급을 비열하고 경망스런 존재로 묘사한다. “우리는 표범이나 사자였다. 표범이나 사자가 물러나면 자칼과 양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표범, 사자, 자칼, 양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대지의 소금이라 생각할 것이다.” 극중 대사에 따르면 당대의 귀족은 표범과 사자였고 새로운 지배자인 부르주아는 자칼에 해당한다. <레오파드>에서 표범은 물러날 때가 되자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는데 영화는 자칼이나 하이에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란 뉘앙스를 풍긴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레오파드>를 이야기하면서 마피아가 지배하는 남부 이탈리아의 현실을 개탄한 적이 있다. 적어도 표범과 사자가 있었다면 지금 같은 혼란과 궁핍은 막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남부 이탈리아가 자칼과 하이에나의 땅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배체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지위에 어울리는 도덕과 미적 취향을 갖추지 못한 지배자들을 경멸하는 그의 입장은 말하자면 품격있는 보수주의에 해당한다.

좌파의 시각으로 보면 시오노 나나미의 말은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귀족이든 부르주아든, 표범이든 하이에나이든, 지배받는 민중인 양의 입장에선 모두 포식자일 뿐이니까. 하지만 세상엔 꼭 지배자와 피지배자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지배자의 윤리를 논하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 흔히 한국의 근현대사를 논하면서 천민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경험한 압축적 경제발전 속에 귀족적 도덕관념이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끼어든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천민자본주의는 <레오파드>식 구분법에 따르면 자칼의 경제질서이다. 표범과 공생하는 길을 택한 유럽과 달리 그들을 멸종시킨 이 체제는 당연히 표범의 윤리 따위 안중에 없다. 도덕에 구애받지 않는 자칼의 세계. 그 속에 살면서 <레오파드>처럼 보수적이되 너무도 아름답게 보수적인 세계를 보는 것은 우울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어째서 우리의 보수는 표범의 윤리와 품격 따위 다 내팽개치고 천박할 대로 천박해진 것일까?

<레오파드>를 본 날,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한 기사를 읽었다. <한겨레> <시사IN> 등이 대서특필한 반면, 조중동 등 주류 언론 대부분이 아예 입을 다물거나 눈에 띄지 않는 기사로 취급했다.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거대한 물주 삼성이 두렵기 때문이다. 원래 성향이 보수적인 신문이니 재벌 앞에 설설 기는 게 당연한 것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 정도 스캔들이라면 아무리 보수적인 미국이나 일본도 난리가 났다. 건전한 보수로 기능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저버린 한국의 주류 언론. 그들은 자칼의 세상에서 자칼의 이에 낀 고기를 파먹고 사는 데 만족한다. 표범의 윤리는커녕 염소똥만큼의 염치도 없다.

P.S. 이번호에 독자선물로 오다기리 조의 브로마이드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못하게 됐다. 배우 매니지먼트사와 협의가 되지 않은 사안이었기에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도리가 없었다. 면목없고 정말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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