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용한 소도시, 18살의 금발 소녀 토브(에반 레이첼 우드)는 엄마를 잃고 아버지 웨이드(데이비드 모스)와 남동생 로니(로리 컬킨)와 살고 있다. 보안관인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엄격하고 간섭이 심하다. 토브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챙기면서 집안에 얽매여 사는 게 갑갑하다. 방학 때 친구들과 해변에 놀러가게 된 토브는 주유소 직원 할랜(에드워드 노튼)에게 호감을 갖는다. 시대에 뒤떨어진 카우보이 복장을 한 할랜은 말투가 어눌하고 웃는 얼굴이 바보 같다. 토브는 그 점에 빠진다. 토브는 그가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영화도 그것이 진실인 양 말한다. 특히 할랜을 탐탁지 않아하는 토브의 아버지와 할랜 두 사람이 대립각을 보일 때 영화의 논리는 더욱 명백해 보인다. 잘못된 권위와 폭력은 아버지에게 있고, 할랜은 그 세계로부터 토브 남매의 순수함을 지켜줄 구원자 위치에 선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겸한 데이비드 제이콥슨은 그렇게 단순한 내러티브로 한 남자에게 깃든 꿈을 말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토브 남매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할랜은 로니의 손에 권총을 쥐어주기도 하고, 문이 잠긴 토브네 집에 도둑처럼 훌쩍 들어와 있기도 한다. 관객의 의심이 짙어지면 영화는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리뷰를 보면 ‘에드워드 노튼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0년 전 이중 자아를 가진 소년의 모습을 정말 충격적으로 그려내며 데뷔를 치렀다’는 게 첫 문장의 요지다. 인간의 양면을 부침개처럼 쉽게 뒤집는 연기 테크닉은 여전히 노튼의 장기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영화 전체가 풀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할랜의 얼터 에고는 <프라이멀 피어>의 그것처럼 영화에서 존재 목적이 명쾌하지가 않다. 이 영화의 플롯은 한 남자의 순수성을 동정하는 드라마와 그것을 배반하는 섬뜩한 서스펜스 스릴러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극중에서는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리지만 그중 한발도 스토리의 주제를 향해 명중했다는 인상은 들지 않는다.
에드워드 노튼의 치밀한 메소드 연기도, 백마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야심찬 풍경도,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요지없는 스토리와 일관성없는 캐릭터에 제약받지 않고 살아남는 건 에반 레이첼 우드의 미모다. 깨끗한 미소도 미소지만 새하얀 대리석처럼 매끈해서 만지고 싶은 그녀의 피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이며 설득력있다.